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주려고 한 정황이 담긴 문건 파일이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다. 검찰의 원전 수사 공소장을 보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2019년 12월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관련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에는 북한 원전 건설 추진 관련 문건이 10여 건 포함돼 있다. 국내에선 탈(脫)원전을 밀어붙인 정부가 뒤로는 이런 모순적 행태를 보인 데 대해 국민들은 큰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국내에선 탈원전 하면서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것만큼이나 앞뒤가 안 맞는 것이어서다.

검찰이 복구한 파일 목록엔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협력 과제’ 등이 포함돼 있다. 에너지 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목록도 들어 있어 단순한 보고서로 보이지 않는다. 문건 작성일(2018년 5월 2~15일)이 1, 2차 남북한 정상회담 사이의 기간이고, 관련 폴더 이름이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뽀요이스(pohjois)’로 붙여진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여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이 문제가 처음 보도됐을 때 “어느 순간에도 원전의 ‘원’자는 없었고, 소설 같은 얘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파일을 꽁꽁 숨기다가 감사원이 자료 확보에 나서기 전날 밤 부랴부랴 삭제한 것을 보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삭제된 문건에는 ‘북한 원전’뿐 아니라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앞서 청와대와 산업부가 긴밀히 협의하고, 청와대가 수정을 요청한 내용도 곳곳에 들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개최 전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보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짜 맞추기 한 흔적이 짙다. 산업부는 자료 삭제에 대해 ‘직원들 스스로 한 행동’이라고 선을 그어왔지만 속속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의구심만 커지고 있다. 그간 여권이 수사·감사에 대해 노골적으로 공격해온 것을 봐도 그렇다. 검찰과 감사원은 그 어떤 외압이 있더라도 사태의 전모를 명명백백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