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복도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복도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탈원전을 선언하고 국내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문재인 정부가 정작 북한엔 원전을 지어주려 했던 정황이 나왔다.

SBS는 지난 28일 보도를 통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관련 문건을 삭제하는 등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공무원들의 공소장을 공개했다.

공무원들이 삭제한 원전 관련 자료 530건 목록에는 청와대 협의·보고 문건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월성 원전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의 원전 폐쇄 결정 전 청와대와 산업부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삭제된 파일 중에는 원전 반대 시민단체 동향을 담은 문건도 있었다고 검찰은 적시했다.

공소장에 적시된 북한 관련 삭제 파일은 모두 17개, 이름이 같은 파일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도 13개다. 복원 결과 이 파일들은 모두 '60 pohjois'라는 상위 폴더 밑에 있었다. '뽀요이스(pohjois)'는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으로 핀란드어까지 쓸 만큼 보안에 신경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삭제 파일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북한 원전 추진방안'의 약자로 보이는 '북원추' 폴더에서 두 가지 버전의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 파일이 삭제됐다. 다른 폴더에서도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북한 전력산업 현황과 독일 통합사례' 파일이 삭제됐다.

이 밖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험자 명단과 에너지 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목록, 일부 전문가의 이력서까지 만들었다 삭제한 것으로 적시됐다.

주목되는 부분은 파일 이름에 적힌 작성 날짜다. 17개 파일 가운데 생성 날짜가 적힌 6개 파일 모두 2018년 5월2~15일 작성됐는데, 이 시기는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차 남북정상회담 사이다.

남북관계 개선상황에서 만든 단순 검토 차원의 문서였다 해도 감사원에 제출하지 않고 심야에 몰래 삭제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이들은 또 파일을 복구해도 내용을 알 수 없도록 'ㄴㅇㄹ' 같은 문자를 써넣고 수정해 저장한 뒤 삭제하는 방식을 썼다고 검찰은 밝혔다.

산업부는 자료 삭제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직원 스스로 한 행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파일을 지운 당사자들은 감사 전날 파일을 지운 것은 '우연'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의 행위가 부처 최고위층 승인과 산업부의 조직적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자료를 직접 삭제한 공무원과 삭제를 지시한 공무원 등 3명을 공용전자기록등 손상, 방실침입,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