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와인'이란 '맛있는 와인'을 찾아가는 여정 [박동휘의 와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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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와인’에 관한 정의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다. 전세계 와인 양조장에 관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극단적인 논법이긴 하지만, 이 세상의 와인을 다 마셔 본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어떤 와인이 맛있는 것인지 아는 이도 역시 없다.
이 대목에서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라는 와인 평론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85년에 『BORDEAUX, A Consumer’s Guide to the World’s Finest Wines』’라는 1471p(한국어판 기준)짜리 단행본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커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통해 ‘최고의 와인은 무엇인가’에 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놨다. ‘보르도 와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은 와인 비평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단숨에 ‘구루’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파커가 와인 산업에 끼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에선 그를 프랑스 와인 마케팅의 귀재로 바라본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파커는 보르도 와인의 희소성을 집중 부각함으로써 명품의 반열에 올려놨다. 그가 말하는 최상의 와인이란 결국 세상에 둘도 없는 와인을 뜻하는데 이를 위해 파커는 와인을 평가하기 위한 매우 세심하고 다양한 조건들을 만들어냈다. ‘떼루아’라고 불리는 토양, 햇빛 등 와인 양조를 위한 자연환경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각 양조장(프랑스에선 샤토라고 칭한다)만의 독특한 포도 농법과 양조 방식을 가미했다. 게다가 ‘빈티지’라고 불리는 각 연도별 특징까지 와인 평가의 요소로 포함시켰다. 예컨데 에르메스 핸드백에 비유하자면, 반드시 프랑스에서 제작돼야 하고, 그것도 가죽 다루는 솜씨가 저마다 다른 작은 공장에서 제작돼야 더 비싸게 쳐주는 식이다. 물론, 핸드백의 제작 연도도 중시돼야 한다.
이 같은 부정적인 평가는 주로 미국, 호주 등 ‘신대륙’ 와인 제조자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파커(그는 미국인이다)가 구축한 프랑스 와인 제국을 공격할 이유가 있었다. 파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맛있는 와인 혹은 최상의 와인에 관한 준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받을만하다. 지친 그는 『보르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이나 음악처럼 와인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이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미술이나 음악처럼 와인도 최고의 품질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합의’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최고의 와인’을 가늠하기 위한, 누구나 받아들일 법한 공감대가 있다는 얘기인데 파커는 이를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포도밭의 테루아가 담겼는가, 포도의 순수함과 특징이 와인에 나타나는가, 지나친 처리작업이 가미되지 않았나, 산업지향적인 와인양조법과 타협하지는 않았나, 포도 품종과 빈티지의 특징히 자연스럽게 드러났나 등이다.
파커의 ‘조언’을 따르자면, 결국 훌륭한 와인이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최상의 포도밭에서 극소량의 포도를 완숙된 상태로 수확해 정제 등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제조자의 철학과 스토리를 담아 만들어 낸 와인을 말한다. 문제는 이런 와인은 결국 엄청나게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극소량을 그토록 정성을 들여 만드니 값은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최고의 와인’을 찾는 과정은 파커 같은 최상위 비평가만의 특권일 지도 모른다. 범인(凡人)들 입장에서 그나마 배가 덜 아프려면 질문을 달리하는 게 낫다. 자신만의 ‘맛있는 와인’을 찾자는 얘기다. 한국의 와인 시장도 이런 여정의 과정이었다. 2007년 경 필자가 『대한민국 와인베스트 100』이란 책을 냈을 때만 해도 국내 와인 소비는 일종의 유행과 비슷했다. 2008년 막걸리 열풍이 불자, 연례 행사처럼 하던 보졸레누보 이벤트 열기가 식은 게 이를 증명한다. 당시만 해도 와인은 호텔, 레스토랑, 카페에서 판매되는 와인(줄여서 호레카 와인)이 주류였다. 2018년쯤에 개정판을 냈을 때는 10여 년 전에 비해 대중화 속도가 가파르긴 했지만, 편식이 꽤 심했다. 판매 순위 100위 안에 오른 와인들 중 상당수가 먹기 편한 달콤한 와인들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내 와인 시장의 판도를 다시 한번 뒤바꿔놓고 있다. ‘홈술족’들이 급증하면서 심지어 사양길로 접어들돈 위스키 판매량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수혜주는 와인이다. 이마트가 2019년 8월 병당 4900원의 가격으로 들여 온 도스코파스라는 칠레산 와인은 채 2년도 안 돼 304만병이 팔렸다. 지난해 이마트에선 약 1200억원 어치의 와인이 팔렸다. 편의점에서조차 와인이 핵심 판매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CU가 최근 ‘mmm’이란 자체 브랜드로 스페인산 와인을 들여온 것도 와인 열풍을 보여주는 한 예다. 정답은 없지만, 결국 최고의 와인이란 나만의 맛있는 와인을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이 대목에서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라는 와인 평론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85년에 『BORDEAUX, A Consumer’s Guide to the World’s Finest Wines』’라는 1471p(한국어판 기준)짜리 단행본을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커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통해 ‘최고의 와인은 무엇인가’에 관한 나름의 해답을 내놨다. ‘보르도 와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은 와인 비평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단숨에 ‘구루’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파커가 와인 산업에 끼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에선 그를 프랑스 와인 마케팅의 귀재로 바라본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파커는 보르도 와인의 희소성을 집중 부각함으로써 명품의 반열에 올려놨다. 그가 말하는 최상의 와인이란 결국 세상에 둘도 없는 와인을 뜻하는데 이를 위해 파커는 와인을 평가하기 위한 매우 세심하고 다양한 조건들을 만들어냈다. ‘떼루아’라고 불리는 토양, 햇빛 등 와인 양조를 위한 자연환경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각 양조장(프랑스에선 샤토라고 칭한다)만의 독특한 포도 농법과 양조 방식을 가미했다. 게다가 ‘빈티지’라고 불리는 각 연도별 특징까지 와인 평가의 요소로 포함시켰다. 예컨데 에르메스 핸드백에 비유하자면, 반드시 프랑스에서 제작돼야 하고, 그것도 가죽 다루는 솜씨가 저마다 다른 작은 공장에서 제작돼야 더 비싸게 쳐주는 식이다. 물론, 핸드백의 제작 연도도 중시돼야 한다.
이 같은 부정적인 평가는 주로 미국, 호주 등 ‘신대륙’ 와인 제조자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파커(그는 미국인이다)가 구축한 프랑스 와인 제국을 공격할 이유가 있었다. 파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맛있는 와인 혹은 최상의 와인에 관한 준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받을만하다. 지친 그는 『보르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이나 음악처럼 와인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이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미술이나 음악처럼 와인도 최고의 품질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합의’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최고의 와인’을 가늠하기 위한, 누구나 받아들일 법한 공감대가 있다는 얘기인데 파커는 이를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포도밭의 테루아가 담겼는가, 포도의 순수함과 특징이 와인에 나타나는가, 지나친 처리작업이 가미되지 않았나, 산업지향적인 와인양조법과 타협하지는 않았나, 포도 품종과 빈티지의 특징히 자연스럽게 드러났나 등이다.
파커의 ‘조언’을 따르자면, 결국 훌륭한 와인이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최상의 포도밭에서 극소량의 포도를 완숙된 상태로 수확해 정제 등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제조자의 철학과 스토리를 담아 만들어 낸 와인을 말한다. 문제는 이런 와인은 결국 엄청나게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극소량을 그토록 정성을 들여 만드니 값은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최고의 와인’을 찾는 과정은 파커 같은 최상위 비평가만의 특권일 지도 모른다. 범인(凡人)들 입장에서 그나마 배가 덜 아프려면 질문을 달리하는 게 낫다. 자신만의 ‘맛있는 와인’을 찾자는 얘기다. 한국의 와인 시장도 이런 여정의 과정이었다. 2007년 경 필자가 『대한민국 와인베스트 100』이란 책을 냈을 때만 해도 국내 와인 소비는 일종의 유행과 비슷했다. 2008년 막걸리 열풍이 불자, 연례 행사처럼 하던 보졸레누보 이벤트 열기가 식은 게 이를 증명한다. 당시만 해도 와인은 호텔, 레스토랑, 카페에서 판매되는 와인(줄여서 호레카 와인)이 주류였다. 2018년쯤에 개정판을 냈을 때는 10여 년 전에 비해 대중화 속도가 가파르긴 했지만, 편식이 꽤 심했다. 판매 순위 100위 안에 오른 와인들 중 상당수가 먹기 편한 달콤한 와인들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내 와인 시장의 판도를 다시 한번 뒤바꿔놓고 있다. ‘홈술족’들이 급증하면서 심지어 사양길로 접어들돈 위스키 판매량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수혜주는 와인이다. 이마트가 2019년 8월 병당 4900원의 가격으로 들여 온 도스코파스라는 칠레산 와인은 채 2년도 안 돼 304만병이 팔렸다. 지난해 이마트에선 약 1200억원 어치의 와인이 팔렸다. 편의점에서조차 와인이 핵심 판매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CU가 최근 ‘mmm’이란 자체 브랜드로 스페인산 와인을 들여온 것도 와인 열풍을 보여주는 한 예다. 정답은 없지만, 결국 최고의 와인이란 나만의 맛있는 와인을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