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무역제재 위협은 사기였나” 노조법만 강행 통과, 비준안은 논의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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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조 입법·ILO협약 무관한 법 개정" 지적에도
"국익 위해 불가피하다"며 지난달 노조법 강행 처리
한달 지나도록 정작 ILO 협약 비준안 처리 논의 없어
"애당초 목적이 협약 비준이 아닌 노조법 개정이었나"
"국익 위해 불가피하다"며 지난달 노조법 강행 처리
한달 지나도록 정작 ILO 협약 비준안 처리 논의 없어
"애당초 목적이 협약 비준이 아닌 노조법 개정이었나"
정부가 지난해 국회 통과를 공언했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이 1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되지 않았다. 지난해 정부와 여당은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 가능성을 거론하며 비준안 처리를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을 강행했으나, 동시 추진하겠다던 비준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의도 없었다. 경영계에서는 "EU 경제 제재를 핑계로 노동계 민원 사항인 노조법만 개정하고 손을 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익 위해 비준해야 한다"던 정부
정부는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29, 87 98호) 비준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하면서 "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자, 선진국이 이행해야 할 당위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당시 발표자는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으로, 현재 청와대 일자리수석이다. 당시 임 차관은 비준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뿐 아니라 우리 기업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일"이라며 "잠재된 통상 리스크를 해소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협약 비준의 이유로 든 '통상 리스크'는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지칭한다. EU는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어 FTA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며 2018년 말 우리 정부를 상대로 분쟁해결 절차에 돌입했다. 경영계에서는 EU의 압박에 대해 "FTA 규정 상 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어떤 경제제재도 할 수 없도록 돼있고, 협약을 비준하더라도 각 국의 노사관계 사정에 맞는 형태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반발했다.
○친노조 노조법만 개정하고 '나 몰라라'
경영계의 우려에도 정부는 ILO 협약 비준을 목표로 노조법 개정을 강행했다. 지난해 12월 연내 비준을 공언한 정부와 여당은 같은 달 9일 '1박2일' 논의를 거쳐 해고·실업자의 기업별 노조 활동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경영계는 국회 논의가 시작되자 수차례 국회를 방문해 "ILO 핵심협약 비준 자체는 찬성하지만 쟁의행위 시 사업장 점거 허용 등 노조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입법과 협약 비준과 상관없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 삭제는 재고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기존의 정부안보다도 더 노조로 기울어진 법안이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ILO 협약 비준 일정을 밝혔다. 이 장관은 당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조법이 개정되면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비준동의안 심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12월)임시국회에서 비준동의안 심의일정이 처리될 것"이라고 했다.
○숙제 마친 고용부는 '닭쫓던 개'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 외통위는 지난달에 이어 1월 임시국회에서도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준안 처리 지연 이유로 야당(국민의힘)의 비협조를 탓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당면과제였던 친노조 입법을 완수한 상태에서 정작 ILO 협약 비준 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검찰개혁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는 이슈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노조법 처리도 야당 없이 뚝딱 처리해놓고 이제와서 야당 탓을 한다"며 "애초 목적이 ILO 협약 비준이 아니라 노조법 개정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노조법 개정에 '총대'를 멨던 고용부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노조법 소관부처로서 맡겨진 '숙제'는 끝냈으나, 여당과 외교부가 비준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가운데 EU와의 분쟁해결 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와 EU 양측은 지난해 11월 초 분쟁해결 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심리'를 마치고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서가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로 나올 경우, 고용부는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위원회'를 꾸려 이행 점검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국익 위해 비준해야 한다"던 정부
정부는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29, 87 98호) 비준안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하면서 "협약 비준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자, 선진국이 이행해야 할 당위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당시 발표자는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으로, 현재 청와대 일자리수석이다. 당시 임 차관은 비준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뿐 아니라 우리 기업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일"이라며 "잠재된 통상 리스크를 해소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협약 비준의 이유로 든 '통상 리스크'는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지칭한다. EU는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어 FTA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며 2018년 말 우리 정부를 상대로 분쟁해결 절차에 돌입했다. 경영계에서는 EU의 압박에 대해 "FTA 규정 상 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어떤 경제제재도 할 수 없도록 돼있고, 협약을 비준하더라도 각 국의 노사관계 사정에 맞는 형태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반발했다.
○친노조 노조법만 개정하고 '나 몰라라'
경영계의 우려에도 정부는 ILO 협약 비준을 목표로 노조법 개정을 강행했다. 지난해 12월 연내 비준을 공언한 정부와 여당은 같은 달 9일 '1박2일' 논의를 거쳐 해고·실업자의 기업별 노조 활동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경영계는 국회 논의가 시작되자 수차례 국회를 방문해 "ILO 핵심협약 비준 자체는 찬성하지만 쟁의행위 시 사업장 점거 허용 등 노조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입법과 협약 비준과 상관없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 삭제는 재고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기존의 정부안보다도 더 노조로 기울어진 법안이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ILO 협약 비준 일정을 밝혔다. 이 장관은 당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조법이 개정되면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비준동의안 심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12월)임시국회에서 비준동의안 심의일정이 처리될 것"이라고 했다.
○숙제 마친 고용부는 '닭쫓던 개'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 외통위는 지난달에 이어 1월 임시국회에서도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준안 처리 지연 이유로 야당(국민의힘)의 비협조를 탓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당면과제였던 친노조 입법을 완수한 상태에서 정작 ILO 협약 비준 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검찰개혁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는 이슈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노조법 처리도 야당 없이 뚝딱 처리해놓고 이제와서 야당 탓을 한다"며 "애초 목적이 ILO 협약 비준이 아니라 노조법 개정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노조법 개정에 '총대'를 멨던 고용부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노조법 소관부처로서 맡겨진 '숙제'는 끝냈으나, 여당과 외교부가 비준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가운데 EU와의 분쟁해결 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와 EU 양측은 지난해 11월 초 분쟁해결 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심리'를 마치고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서가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로 나올 경우, 고용부는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위원회'를 꾸려 이행 점검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