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란 관계, 한국 내 이란중앙은행 자금 동결로 불편 기류
이란, 선박의 '해양 오염' 주장…정부 "상세한 상황 파악 중"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 미국 제재 협조에 대한 불만 가능성 주목
이란이 항해 중이던 한국 국적 선박을 해양 오염 조사 명목으로 억류하면서 양국 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란 측은 한국 선박의 환경 규제 위반을 주장하고 있지만, 위반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같은 과도한 대응이 과연 필요했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이란은 한국이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이란과 교역 및 금융거래를 중단한 것에 불만을 표출했는데 그런 감정이 억류 배경에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는 "4일 오후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항해 중이던 우리 국적 선박(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 1척이 이란 당국의 조사 요청에 따라 이란 해역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케미호는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 중이며 총 20명의 선원(한국 국민 5명 포함)은 안전한 것으로 외교부는 파악했다.

외교부는 억류 이유 등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면서 이란 정부에 선박의 조기 억류 해제를 요청 중이다.

이란 측은 선박의 해양 오염을 주장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나포 사실을 밝히면서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선박의 선사인 디엠쉬핑은 혁명수비대가 이란 해역으로 들어가 검사를 받을 것을 요구하면서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양 오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 미국 제재 협조에 대한 불만 가능성 주목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 이후 불편해진 한-이란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5월 이란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뒤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했으며,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2차적 제재 등의 우려로 제재를 이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과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으며, 한국 내 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개설된 원화 계좌도 동결됐다.

이란 정부는 한국에 원유를 수출하고 받은 원화 대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한국 정부에 동결 해제를 거듭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때문에 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간 다른 방식으로 이란의 불만을 해소하려고 노력해왔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미국과 협의를 통해 인도적 물품에 대해 제재 예외를 허용받아 작년 5월 첫 의약품 수출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소규모의 인도적 교역은 이란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기 부족했고, 원유 대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에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이란 당국자 인터뷰 발언이 나오는 등 양국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돼왔다.

정부는 이 같은 기류가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선박을 억류한 주체가 이란 정부의 통제권 밖에 있는 혁명수비대라는 점에서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내 주요 이권 사업을 장악하고 있어 제재와 교역 중단으로 상당한 손해를 입었으며 대이란 제재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원화 대금 지불을 압박하기 위해 선박을 계속 억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이번 억류가 한국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살해된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1주기를 맞아 미국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