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욱 경장 "구조대 업무 6년 수색작업 중 가장 최악의 조건"

"해경 구조대입니다.

배 안에 누구 있습니까?"
'야속한 하늘' 목숨 건 전복 선박 수색…실종 선원은 어디에
30일 오후 9시 21분께 제주항 인근 해상에서 뒤집힌 32명민호(39·승선원 7명) 선체에 가까스로 올라탄 제주해양경찰서 해경구조대 정기욱(33) 경장 등 2명은 배 중앙부터 선미까지 망치로 바닥을 두드리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 해경 구조대원은 3차례 시도 끝에 가까스로 선체 위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높은 파도는 계속해서 구조대원들을 집어삼켰다 뱉기를 반복했다.

족히 6m는 됨직한 높은 파도 탓에 전복 선박 바로 옆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던 함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강풍과 비까지 내리는 최악의 기상 상황 속에서도 이들 구조대원은 계속해서 배 아래를 망치로 두드리며 타격 신호를 보냈다.

잠시 뒤 선미 쪽 배 안에서 '탕, 탕, 탕' 3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해경 구조대원은 소리가 들려오는 배 아래를 향해 "몇 명이 계시느냐, 건강 상태는 괜찮냐"고 소리쳐 물었지만,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지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타격 신호는 계속해서 전해왔다.

배 안에서 생존 신호가 들려오자 해경구조대와 제주해양경찰청 소속 특공대, 항공구조사 등이 잠수복을 착용하고 산소통을 메고 선내 수색을 하기 위해 번갈아 가며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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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내 진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강한 비바람과 높은 파도에 더해 전복 선박에서 유출된 그물 등 어구들이 얽히고설켜 30m 주변에 널려 있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선내로 진입하려던 구조대원들이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도에 떠밀려가면서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떠밀려 가는 동료를 구조하고, 떠밀려가고를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구조대들이 어깨가 탈골되거나 무릎을 다쳤다.

고속단정 2척이 침수되는 피해도 발생했다.

결국 29일 오후 9시 52분부터 이튿날까지 8차례에 걸쳐 이어진 선내 진입 시도는 끝내 실패했다.

그동안에도 선체 위에 올라탄 구조대원들은 타격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며 선내 선원들의 안전을 확인했다.

동시에 제주해양경청청 사고대책본부에서는 30일 오전 3시 13분까지 32명민호 선원과 11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나 기상 상황이 악화하면서 전복된 선박은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로 표류하다 오전 3시 47분께 제주항 서방파제에 좌초된 뒤 파손돼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한국인 4명과 인도네시아인 3명 등 승선원 7명 모두 실종됐다.

선체 위에 올라타 타격 신호를 보냈던 정기욱 경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얼마나 선체 위에 머무른 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빨리 구조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며 "앞은 보이지 않고 오직 파도와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정 경장은 "제주는 겨울철 북서풍이 부는 탓에 기상이 좋지 않아 배 사고가 한 번씩 발생한다"며 "하지만 해경구조대 업무를 맡은 지 6년 동안 했던 수색작업 중 이번이 가장 최악의 조건에서 이뤄졌다.

해경은 끝까지 수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