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소망이로 건강하게 자라난 자매, 어미 소는 새 생명 잉태
텔레비전으로 참상 지켜본 장흥 농민 암소 싣고 구례로 달려와 기증하기도
수해 참사 딛고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소띠해' 희망전도사로
'희망이'와 '소망이'라는 이름을 얻은 쌍둥이의 머리에서는 맑고 연한 우윳빛의 뿔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지붕 위에서 이틀 밤을 버티고 내려와 쌍둥이 자매를 출산한 어미는 또다시 새 생명을 잉태했다.

섬진강 수해 참사에서 살아남은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봉성농장의 쌍둥이 송아지 가족이 소띠 새해를 앞두고 반가운 근황을 알렸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희망이와 소망이는 여전히 서로를 보살피고 체온을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또래보다 덩치가 작기는 해도 자매는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탈 없이 자라 농장을 운영하는 백남례(61) 씨 가족에게 마음의 버팀목이 됐다.

어미 소는 마을을 집어삼킨 물이 빠질 때까지 꼬박 이틀 동안 먹이 한 줌,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지붕 위에서 쌍둥이를 뱃속에 품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수해 참사 딛고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소띠해' 희망전도사로
백씨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마취총을 맞고 크레인에 실려 땅으로 내려온 어미가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날 것이라고 체념했다.

울퉁불퉁 찌그러진 양철지붕에 온몸을 긁힌 어미는 지푸라기조차 없는 진흙탕에서 홀로 새벽녘에 쌍둥이를 낳았다.

백씨 가족은 기진맥진한 어미의 젖이 말라버리자 쌍둥이 자매에게 두 달간 분유를 타서 먹이며 돌봤다.

태어날 때부터 왜소했던 쌍둥이 자매는 더딘 성장 속도에도 혹독했던 여름을 버텨냈다.

백씨 가족은 쌍둥이 송아지로부터 희망을 얻었다.

씩씩하게 자라는 자매를 바라보며 소망도 빌었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강둑에서, 생뚱맞게도 군부대 막사에서 살아 돌아온 140여 마리의 소들이 또 다른 송아지 25마리를 출산했다.

어느덧 희망과 소망은 봉성농장의 상징이자 쌍둥이 자매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수해 참사 딛고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소띠해' 희망전도사로
생채기 곳곳에 딱지가 내려앉은 어미도 시나브로 건강을 되찾았고 이제는 쌍둥이의 동생 송아지 출산을 기다린다.

백씨 가족에게는 쌍둥이 송아지와 더불어 고단했던 복구에 힘을 보태준 값진 인연이 또 하나 있다.

방송사 인터뷰 도중 참았던 눈물을 보인 백씨의 아들 김정현(29) 씨를 지켜본 장흥 농민이 튼튼한 암소 한 마리를 트럭에 싣고 왔다.

그는 텔레비전으로 구례의 참상을 지켜보며 두 번의 돌림병으로 소들을 몽땅 잃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아무런 기별 없이 구례까지 달려온 장흥 농민은 자신의 고난 극복기와 함께 암소를 남기고 돌아갔다.

김씨는 8월의 끝자락이었던 이날의 감명을 가슴에 새기며 밤낮으로 농장 재건에 매달렸다.

그는 쌍둥이 송아지에게서 얻은 기운, 장흥 농민으로부터 받은 온정을 이웃과 함께 나눴다.

수해 참사 딛고 태어난 쌍둥이 송아지…'소띠해' 희망전도사로
어느 정도 주변을 돌아본 여유를 되찾자 김씨는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길 건너 이웃집을 찾아갔다.

이웃집은 봉성농장과 달리 수해 당시 모든 소를 잃었다.

김씨는 이웃집 노파에게 송아지 고삐를 넘겨주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다독였다.

소띠 해 바람과 함께 김씨는 "코로나19 시국에 많은 분이 힘들 터"라며 "쌍둥이 송아지가 커가듯 희망 놓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29일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