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소설 쓰기 대가' 요슈타인 가아더 신작 '꼭두각시 조종사'

"이렇게 매주 장례식장을 찾는 일은 서서히 나의 습관 또는 삶의 한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악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족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
철학적 사유를 소설로 쉽게 풀어낸 '소피의 세계'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요슈타인 가아더의 새 장편소설 '꼭두각시 조종사'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인 60대 언어학자 야코브 야콥센이 털어놓는 고백이기도 하다.

야콥센은 매주 신문 부고면을 뒤져 발견한 장례식장을 찾아가 고인과의 오랜 추억을 뛰어난 입담으로 포장해 풀어낸다.

하지만 사실 그는 고인을 알지 못하므로 그가 하는 말은 다 지어낸 이야기다.

그는 왜 모르는 사람들의 장례식을 조문할까?
학식 있고 점잖은 노신사가 왜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할까.

이유는 관계에 대한 상실감과 애착, 그리고 외로움 때문이다.

가족도, 친척도 없이 쓸쓸히 살아온 야콥센은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고인에 애도를 전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에 섞여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야콥센이 언어학자가 된 배경도 맥을 같이한다.

스스로 혈족적 뿌리와 계보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그가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계보이자 정체성은 '인도유럽어족'이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 대신 "언어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도유럽어족에 대한 탐구는 야콥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이런 서사 구조를 통해 작가는 존재, 관계, 고독 등의 철학적 화두를 새삼 곱씹게 만든다.

야콥센이 찾아가는 고인의 직업에 따라 다양한 철학적 사유가 펼쳐지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천문학자의 장례식에서는 우주 속 신비한 인간의 존재를, 성직자 장례식에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논한다.

손화수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했다.

가아더는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오슬로 대학을 나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철학, 신학, 문학을 가르치다 1986년 첫 소설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던 그는 1991년 장편소설 '소피의 세계 : 소설로 읽는 철학'을 펴내 세계적인 스타 작가로 발돋움한다.

젊은 독자들이 철학을 더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책은 세계 64개 언어로 번역돼 4천50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