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3일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강제 종결하고 국가정보원법을 단독 의결했다. 지난 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후 남은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당분간 강제 종결시키지 않겠다고 밝힌 지 사흘 만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10건 중 9건은 민주당 발의안이 차지하는 등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무기로 입법권을 사실상 독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與,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

[단독] 국회 통과 90%가 여당法…사실상 입법권 독점
민주당은 이날 오후 8시10분께 국정원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을 표결에 부쳐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뒤 국정원법을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은 구속된 정정순 의원을 제외한 173명과 열린민주당 의원 3명, 민주당에 우호적인 무소속 의원, 기본소득당 의원 등을 총동원해 종결에 필요한 찬성 정족수 180명(재적의원 5분의 3)을 확보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코로나19로 위급한 시기에 국회가 소모적인 무제한 토론만 이어간다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표결 참여를 거부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현장의 방역은 민주당 불참 속에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고 비꼬았다. 같은 당 박수영 의원은 “처음엔 우리를 지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었겠지만 초선 의원 전원이 참여한다고 하니 (민주당이) 당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반대 토론에 나섰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오후부터 12일 새벽까지 12시간4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경신했다.

국정원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경찰로 이관(유예기간 3년)되고, 국정원의 정보 수집 대상에 ‘경제질서 교란’ 관련 정보가 추가된다. 국가기관장이 국정원의 정보제공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도 생겼다. 야당은 국정원이 이 같은 조항을 근거로 기업인 등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제질서 문란과 관련한 조사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관세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국정원이 끼어들어 ‘민간인 사찰’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정원법 통과 이후 국민의힘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태영호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섰고 이에 민주당은 곧바로 종결 동의서를 제출했다. 동의서 제출 24시간 뒤 종결 표결이 가능한 만큼 민주당은 14일 저녁 다시 표결을 시도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고 남북관계발전법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당이 숫자의 힘으로 강제 중단시키는 데 항의하는 것 외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기울어진 ‘입법 운동장’

21대 국회 출범 뒤 민주당이 ‘입법 독주’에 나설 여건이 마련되면서 입법 쏠림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신문 분석 결과 21대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 385건 가운데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354건(91.9%)이었다. 이날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0건 중 9건 이상이 여당 소속 의원이 발의한 법안(법안 철회·대안 반영 폐기 제외)이란 뜻이다.

반면 국민의힘 발의 법안 중 21대 국회를 통과한 것은 10건 중 1건에도 못 미쳤다. 총 26건이 가결돼 전체 가결 법안의 6.8%에 그쳤다.

국회가 처리한 의원 발의 법안 전체(1277건)를 기준으로 해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935건)이 전체의 73.2%를 차지했다.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298건으로 전체 처리 법안의 23.3%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발의해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엔 여야 간 이견이 컸던 쟁점 법안이 다수 포함됐다. 기업규제 3법과 공수처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고용진 의원이 발의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도 지난 8월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원안대로 가결됐다.

野 법안은 무쟁점만 통과시켜

이에 비해 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비쟁점 법안 위주로 국회를 통과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해 통과된 국회입법조사처법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입법조사처장의 임명 동의를 요청할 때 재산신고 사항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 개정안은 사립학교 교직원연금의 주식 대여를 금지해 연금 보유 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되는 것을 막는 게 핵심이다. 이 법안은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기류와 맞물려 큰 이견 없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상임위원장도 독식하면서 입법 쏠림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며 “21대 국회가 출범할 때 여당이 타협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현/고은이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