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강연서 2년여 협상 회고…"북 협상팀 권한없어 문제·외교 재개해야"
"한미동맹, 인도태평양 평화시대 열 수 있어"…방위비 등 지도자 무능서 비롯 지적
비건, 마지막 대북메시지…"싱가포르 정상합의가 나아갈 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첫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싱가포르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한에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지난 2년여간 북한과의 협상을 이끈 비건 부장관이 내달 미국의 정권교체를 앞두고 내놓은 사실상 마지막 대북 메시지다.

방한 중인 비건 부장관은 10일 아산정책연구원 초청으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싱가포르 정상합의가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상합의는 ▲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 한국전 참전 유해 송환 등 4개 항으로 구성됐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 2년간 후퇴, 실망, 놓친 기회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북특별대표를 맡은 첫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유한 한반도를 위한 비전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우리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안타깝게도 북한의 대화 상대는 지난 2년간 너무 많은 기회를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는 안된다"며 "외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내년 1월로 예상되는 북한의 8차 노동당대회를 거론하며 "우리는 북한이 그때까지 시간을 외교를 재개하기 위한 방향을 설정하는 데 사용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북한이 결국 진지한 외교를 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두 국가가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간의 협상 과정과 관련,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특히 아쉬워했다.

비건 부장관은 "하노이 때 문제점은 카운터파트가 비핵화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이를 중요한 교훈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북한도 이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간 북미 정상이 주도하는 톱다운 외교로 협상이 진행됐지만 꼼꼼한 실무협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또 "미국은 남북 협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면서 "이는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 70년간 한반도의 상황은 분명히 바뀌었으며 동맹도 진화해야 한다"면서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둔 동맹을 확장해 새 활력을 불어넣으면 양국 모두에 막대한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평화시대(Pax Indo-Pacifica), 즉 평화롭고 보호받으며 인도·태평양을 구성하는 이들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오는 시대를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 양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민주주의의 닻(anchor)'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 현안이 매끄럽게 마무리되지 못한 점에 대해선 쓴소리도 했다.

그는 분담금 협상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의 도전들은 "우리 지도자들이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인 목적에 목소리를 부여하지 못한 무능(inability)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