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차별과 혐오, 통제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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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능력주의 주창하는 책 '능력주의와 불평등'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
미국의 미식축구 코치인 배리 스위처는 왜곡된 능력주의를 야구 게임의 비유로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했다.
능력주의 확신이 과도한 사회에선 사회 불평등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달리기 시합에서도 출발선이 다르고 경주 과정 또한 불공평함을 무시한 채 결승선의 도착 순위만 주목한다면 진실을 놓치고 만다.
능력주의에 대한 확신은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걸 넘어 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더 불공정하고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불평등과 특권을 정당화하는 이른바 '능력주의의 역설'이다.
능력주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같은 인류의 정의관과 맞닿아 있어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능력주의 연구 중 상당수가 능력주의를 가장한 세습주의, 사이비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결론에선 '진정한 능력주의'를 외치고 만다.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란 그만큼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능력주의는 '시험 성적에 따른 능력주의'다.
대학 입학시험, 임용 시험, 입사 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차별 대우는 정당화된다.
직무 수행 능력이나 성과, 그리고 기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시험 성적만으로 특권적 지위를 얻는 '시험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신간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능력주의의 논리와 작동 방식, 해악을 다양한 각도에서 냉철하게 짚어나간다.
'진정한 능력주의', '이상적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지향하는 것. 저자는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 등 10명이다.
필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능력주의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그 해법을 찾는다.
제1부 '시험과 학교, 능력주의의 산실'에서 청소년운동 활동가인 공현 씨는 능력주의가 학교 교육·시험과 밀접히 결합돼 있다며 교육에서부터 탈능력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육학자 이경숙 씨는 헌법에 명시된 능력주의적 요소를 읽어내며 권리가 '능력'으로 제한되지 않고 존엄의 원리에 따라 부여돼야 한다고 말한다.
초등교사 정용주 씨는 가상의 빈곤 가정 학생의 예를 들어 그 학생이 능력주의로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뒤 구제는커녕 오히려 삶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논증해나간다.
사회활동가이자 정치학자인 채효정 씨는 자신이 앞장서 온 '학벌 없는 사회' 운동이 남긴 것들을 돌아보며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의 논리 너머 새로운 시민 저항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제2부 '능력주의는 왜 해로운가'는 사회 여러 영역에서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를 다룬다.
박권일 씨는 '능력주의, 오작동이 문제인가 작동이 문제인가' 등 네 가지 질문을 통해 능력주의로 가장한 세습주의와 지대 추구를 폭로·비판함과 동시에 이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비판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쓴 노동운동가 김혜진 씨는 능력주의가 성과급제 등으로 일터에서 전면화하고 있고 시험만이 아닌 직무 위계와 차별, 성과 경쟁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며 능력주의 문제를 노동자 집단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의 관점에서 극복해나가자고 제안한다.
이와 함께 의학계의 김혜경·문종완 씨, 페미니스트 이유림 씨의 분석과 주장도 '의사들의 엘리트주의, 그리고 어긋난 정의', '뛰어난 여성들은 자신의 파이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들어볼 수 있다.
다음은 장발장은행장이자 '소박한 자유인' 대표 홍세화 씨가 책의 닫는 글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피력한 '지적 인종주의'라는 용어를 빌려 능력주의를 비판한 대목이다.
그는 능력주의가 인간을 위계 서열화해 억압하는 인종주의라며 소비자 아닌 시민이 되자고 제안한다.
요컨대 탈능력주의다.
"지적 인종주의는 '가장 교묘하여,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인종주의로서, 지배 세력이 우월한 학업 성적 그리고 학위와 자격증으로 입증된 지적 우수성을 과거의 특권이나 귀족 타이틀처럼 내세워 자기들이 차지한 지배적 위치를 정당화한다.
학생들에겐 거리낌 없이 '너는 1등급이다', '너는 9등급이다'라고 규정한다.
지적 인종주의의 광폭한 형태다.
"
"노골적인 지배와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갈등과 저항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지배 체제는 불평등을 겪는 피지배자들의 자발적 복종 또는 동의를 이끌어내려 한다.
곧 이데올로기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능력주의가 강조되고 또 각자의 능력은 오로지 그의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 봉건시대의 신분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불평등과 그 세습(재생산)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한국의 계층과 직업에 따른 극심한 소득 격차는 이 정당화의 기반 위에 있다.
"
교육공동체 벗. 228쪽. 1만4천원. /연합뉴스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
미국의 미식축구 코치인 배리 스위처는 왜곡된 능력주의를 야구 게임의 비유로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했다.
능력주의 확신이 과도한 사회에선 사회 불평등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달리기 시합에서도 출발선이 다르고 경주 과정 또한 불공평함을 무시한 채 결승선의 도착 순위만 주목한다면 진실을 놓치고 만다.
능력주의에 대한 확신은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걸 넘어 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더 불공정하고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불평등과 특권을 정당화하는 이른바 '능력주의의 역설'이다.
능력주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같은 인류의 정의관과 맞닿아 있어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능력주의 연구 중 상당수가 능력주의를 가장한 세습주의, 사이비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결론에선 '진정한 능력주의'를 외치고 만다.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란 그만큼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능력주의는 '시험 성적에 따른 능력주의'다.
대학 입학시험, 임용 시험, 입사 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차별 대우는 정당화된다.
직무 수행 능력이나 성과, 그리고 기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시험 성적만으로 특권적 지위를 얻는 '시험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신간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능력주의의 논리와 작동 방식, 해악을 다양한 각도에서 냉철하게 짚어나간다.
'진정한 능력주의', '이상적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지향하는 것. 저자는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 등 10명이다.
필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능력주의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그 해법을 찾는다.
제1부 '시험과 학교, 능력주의의 산실'에서 청소년운동 활동가인 공현 씨는 능력주의가 학교 교육·시험과 밀접히 결합돼 있다며 교육에서부터 탈능력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육학자 이경숙 씨는 헌법에 명시된 능력주의적 요소를 읽어내며 권리가 '능력'으로 제한되지 않고 존엄의 원리에 따라 부여돼야 한다고 말한다.
초등교사 정용주 씨는 가상의 빈곤 가정 학생의 예를 들어 그 학생이 능력주의로 '독립적 개인'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뒤 구제는커녕 오히려 삶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논증해나간다.
사회활동가이자 정치학자인 채효정 씨는 자신이 앞장서 온 '학벌 없는 사회' 운동이 남긴 것들을 돌아보며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의 논리 너머 새로운 시민 저항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제2부 '능력주의는 왜 해로운가'는 사회 여러 영역에서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를 다룬다.
박권일 씨는 '능력주의, 오작동이 문제인가 작동이 문제인가' 등 네 가지 질문을 통해 능력주의로 가장한 세습주의와 지대 추구를 폭로·비판함과 동시에 이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비판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쓴 노동운동가 김혜진 씨는 능력주의가 성과급제 등으로 일터에서 전면화하고 있고 시험만이 아닌 직무 위계와 차별, 성과 경쟁 등으로 구현되고 있다며 능력주의 문제를 노동자 집단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의 관점에서 극복해나가자고 제안한다.
이와 함께 의학계의 김혜경·문종완 씨, 페미니스트 이유림 씨의 분석과 주장도 '의사들의 엘리트주의, 그리고 어긋난 정의', '뛰어난 여성들은 자신의 파이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들어볼 수 있다.
다음은 장발장은행장이자 '소박한 자유인' 대표 홍세화 씨가 책의 닫는 글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피력한 '지적 인종주의'라는 용어를 빌려 능력주의를 비판한 대목이다.
그는 능력주의가 인간을 위계 서열화해 억압하는 인종주의라며 소비자 아닌 시민이 되자고 제안한다.
요컨대 탈능력주의다.
"지적 인종주의는 '가장 교묘하여,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인종주의로서, 지배 세력이 우월한 학업 성적 그리고 학위와 자격증으로 입증된 지적 우수성을 과거의 특권이나 귀족 타이틀처럼 내세워 자기들이 차지한 지배적 위치를 정당화한다.
학생들에겐 거리낌 없이 '너는 1등급이다', '너는 9등급이다'라고 규정한다.
지적 인종주의의 광폭한 형태다.
"
"노골적인 지배와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갈등과 저항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지배 체제는 불평등을 겪는 피지배자들의 자발적 복종 또는 동의를 이끌어내려 한다.
곧 이데올로기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능력주의가 강조되고 또 각자의 능력은 오로지 그의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 봉건시대의 신분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불평등과 그 세습(재생산)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한국의 계층과 직업에 따른 극심한 소득 격차는 이 정당화의 기반 위에 있다.
"
교육공동체 벗. 228쪽. 1만4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