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이나 물리적인 원인으로 조직이 손상되면 조직의 재건 및 복구를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동시에 조직 내에 잠자고 있던 수지상세포나 대식세포와 같은 선천면역세포가 잠을 깨고 림프관을 따라 국소림프절로 이동한다.

침입자가 떼로 몰려오거나 면역세포가 똑똑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게 염증

손상된 조직이 열심히 복구되는 동안 후천면역세포 중의 하나인 처녀 T세포는 대기소(국소 림프절)에서 업무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 드디어 선천면역세포의 지침이 내려지면 본인이 책임진 적군의 사진을 들고 핏속으로 들어가 전신을 돌다가 전쟁이 발발한 장기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T세포는 전쟁터에서 자기가 맡은 적을 섬멸하고 조직의 복구를 완수한다. 이 과정에서 T세포의 훈령을 받은 B세포 역시 항체를 생성해 적군(병원체)을 빨리 제거하고 없애는데 일조하거나 적군이 우리 몸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 영양분을 탈취하고 증식하는 것을 막는다. 이 과정이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면 평균 2~3주 걸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우리 몸에서 별다른 증상 없이 항상 벌어지고 있는 ‘정상 방어 면역능’이다. 그러나 다수의 침입자가 동시에 체내로 들어오거나 또는 면역세포들이 똑똑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면역세포와 병원체 간에 치열한 공방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염증’이라는 병리현상과 함께 증상이 나타나 환자가 아프게 된다. 정상 방어 면역능이 빨리 기능을 못해 조직이 계속 손상되고 열나고 붓는 등의 증상이 지속된다.

염증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해당 조직의 봉쇄조치가 일어난다. 섬유세포가 염증이 발생한 조직 내에 자라서 전쟁터를 봉쇄해 버린다. 이를 섬유화라 부른다. 섬유화 만으로도 염증 조직 봉쇄가 잘 안되면 콘크리트를 쳐서 더욱 견고하게 봉쇄하니 이를 석회화라 부른다.

조직의 유연성이 중요한 기관지나 폐와 같은 장기에 섬유화나 석회화로 봉쇄 조치가 일어날 정도로 염증이 지속되면 천식환자의 경우처럼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일상적인 정상 면역능에 대한 이해는 염증치료제 개발의 핵심이다.
[성승용의 면역학 강의] ③우리 몸에 염증은 왜 생길까
염증 원인과 발생 장기는 모두 각양각색

그러나 정상 방어 면역능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아직 멀고 요원해 보인다. 즉, 정상 방어면역능과 염증은 일견 동일한 세포와 동일한 체액성 인자가 관여하는 동일한 반응으로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침입자에 반응해 자각 증상없이 빨리 끝나면 이를 정상 방어 면역능이라 부르고, 조직이 계속 손상되면서 환자의 자각 증상이 지속되면 이를 염증이라 부른다. 그렇다 보니 염증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면역세포의 정상적인 활성화 기전과 정상적으로 활성화를 제어하는 기전에 대한 이해는 염증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지식이다.

염증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발생하지 않는 장기가 없다. 원인도 가지각색이다. 가장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것이 병원체 감염에 의한 염증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뇌염, 뇌수막염, 각결막염, 피부염, 비염, 부비동염, 인후염, 기관지염, 폐렴, 위염, 대장염, 골관절염, 방광염, 근염 등 염증이 발생한 장기에 따라 염증을 분류하는 게 임상적으로는 가장 직관적이다. 다양한 장기를 침범하는 병원체들이 일으키는 염증에 대해서는 코비드 폐렴, 결핵성 장염, 헤르페스 결막염 등과 같이 병원체와 침범 장기를 함께 부르는 게 관례이다.

뚜렷한 병원체 감염 없이 일어나는 염증 또한 허다하다. 퇴행성 골관절염, 류마티스성 질환, 전신성 홍반성 낭창, 아토피 피부염, 염증성 장질환, 비알콜성 지방간염, 알츠하이머병 등 이루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꽃가루, 집먼지 진드기, 땅콩 등은 비염, 피부염 및 장염을 일으키니 염증의 세계는 뒤엉킨 실타래만큼이나 복잡해 보인다.

이렇다 보니 지금도 많은 난치성 만성 염증성 질환에 걸된 환자들이 효과 좋은 염증 치료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원인도 수천가지에다가 병에 걸린 장기도 가지각색이다 보니 안전하면서도 효능 좋은 염증 치료제 개발은 요원해 보인다. 아직은 지난 100년간 사용되어온 스테로이드를 효능면에서는 이길 약물은 없다. 하지만 부작용이 심하다 보니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사용하기는 매우 부담스럽다.

정상 방어 면역능 연구의 네가지 방향

정상 방어 면역능에 대한 연구는 크게 네가지 주제로 요약된다. 첫째가 면역반응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이다. 병원체, 꽃가루, 암, 이식된 장기 등에 대한 면역반응의 가장 최초 단계 스위치는 어떻게 켜지는 걸까. 면역세포들은 원인 물질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수조개의 스위치를 각각 별도로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둘째는 염증의 개별 원인에 대한 면역 반응의 유형이다. 면역계를 구성하는 세포도 매우 다양하고 혈액이나 조직 내의 체액성인자 또한 아주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면역 구성체들은 그 원인에 따라 동원되는 병사가 아주 다양하다. 육·해·공군 만으로 단순화시키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면역 구성체가 원인별로 다르게 반응한다. 점막을 통해 침입하는 병원체와 혈액으로 직접 침투하는 병원체에 대한 정상 면역 반응과 방어 실패로 인한 염증 반응의 유형은 판이하게 다르다.

셋째가 면역계의 기억능이다. 사람의 몸에 백신을 주사해 병원체를 기억시키면 차후에 병원체가 감염돼 조직을 손상시키기 전에 병원체를 즉시 제거한다. 그러나 어떤 병원체는 한번 감염되면 우리 몸이 평생 기억하지만 어떤 병원체는 수주간만 기억하거나 아예 기억을 못한다. 이유가 뭘까.

마지막 주제는 면역 반응의 조절이다. 지난호에서 면역반응의 존재 가치는 생체 쓰레기를 치움과 동시에 생체 쓰레기가 생기지 못하게, 즉 조직이 손상되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염증의 원인에 의해 조직 내에서 잠자던 선천면역계 세포가 잠을 깨면 지저분하게 부서진 폐허에서 폐자재를 잘게 부수어 치운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몸 조직의 손상이 동반된다. 선천세포들은 조직의 복구를 위해 피아(彼我) 구분을 못하고 물질들을 잘게 부수는 수많은 효소와 살아 있는 생명체면 모두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활성산소와 같은 화합물을 생성한다.

피아 구분 못해 조직 손상 일으키는 선천면역세포 통제가 면역 조절

후천면역세포 중 B림프구가 생산한 항체가 병원체에 깃발을 꽂거나 병원체만을 인식할 수 있는 T림프구가 대기소(림프절)에서 전쟁터로 동원되고 나서야 피아가 명확히 구분된다. 병원체 감염 후 충분한 수의 T림프구가 대기소를 출발해 전쟁터에 도달하기까지는 평균 1주 남짓 걸리고, B림프구에 의해 쓸 만한 항체가 제대로 만들어지기까지는 감염 후 2~3주가 소요된다. 그렇다보니 감염 후 2~3주 동안은 선천면역세포에 의한 조직 손상을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피아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선천면역세포에 의한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병원체를 제거하고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면역 반응의 강도 조절과 시의적절한 작전 종료가 필수적이다. 이를 면역 조절이라 한다.

이러한 네가지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직 없다. 만일 이 질문들에 완벽히 대답할 날이 온다면 감염, 알레르기, 암, 장기이식, 염증성 치매 등의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능이 좋은 염증치료제가 시장에 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는 참을 만한 부작용으로, 실타래처럼 복잡한 염증 반응의 많은 경로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신약들이 경쟁하는 춘추전국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보다 효능 좋고 안전한 염증 치료 신약들이 난치성 만성 염증 질환으로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 곁으로 빨리 가기를 기대하면서 다음 호부터는 이 네가지 질문들에 대한 개념과 연구 현황을 차례대로 정리하고자 한다.

염증 치료 신약 개발에도 코페르니쿠스적 사고 필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현상을 관찰한 과학자들은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직관에 의해 해석한다. 과학적 관찰은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의 정확한 서술로부터 시작된다. 현상들의 인과 관계에 대한 해석은 산업 발전의 중요한 초석이 된다.

예를 들어,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던 항해사들에게 달력은 절실한 생존수단이었다. 정밀한 달력에 대한 수요는 하늘의 별과 해를 관찰하는데 있어서 사고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16세기 초 천동설 중심의 천문학이 지배적이던 세상에 코페르니쿠스는 뜬금없이 지동설을 주장하는 덕에 개인의 인생은 꼬였지만 말이다. 이로부터 100년 뒤에 나타난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수정해 더 세련되게 만들었음에도 그 역시 개인적인 삶은 종교 재판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러나 만일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구는 서있고 해가 지구 옆을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땠을까. 핸드폰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핸드폰 뿐이겠는가.

하나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산업적 파급 효과를 갖는다. 염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피아 구분에 대한 고전적 사고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염증 치료 신약은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다음 호부터 이어지는 면역 반응의 관찰에 대한 많은 상충되는 해석들에 대한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성승용의 면역학 강의] ③우리 몸에 염증은 왜 생길까
성승용

몸속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 논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면역학 전문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3년간 교환교수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재임 중이며, 아토피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인 샤페론의 대표이사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