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교수의 신간 '탄소 사회의 종말'

지난해 12월 말에 정체를 처음 드러낸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기세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른다.

최근엔 3차 대유행(팬데믹) 단계로 접어들어 지구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구종말 시계가 종말을 뜻하는 자정까지 겨우 100초밖에 남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시계를 앞당긴 핵심 위협이 기후위기라는 데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그동안 인간은 지구의 주인처럼 행세해왔다.

산림 벌채, 광산 개발, 댐 건설, 도로 개통, 신도시 건립, 축사 조성 등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마구잡이로 파괴했다.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사슬로 연결돼 있을 때는 병원균이 소수의 생물종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이른바 '희석효과'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해질수록 병원체의 확산효과는 커진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그 심각성에 동의해야 한다.

더불어 기후위기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한 수많은 기후위기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저서 '탄소 사회의 종말'은 통계나 과학적 설명만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여타 도서와 달리, 인간의 구체적 경험과 인식, 사회·정치적 차원을 중심에 두고 기후위기를 새롭게 조명해나간다.

인권사회학자인 저자가 사용하는 핵심 관점은 '탄소 사회'로, 두 가지 차원에서 이를 규정한다.

하나는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이 깊이 내면화한 고탄소 사회체제를 이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생산, 소비, 그리고 인간의 내밀한 의식까지 지배하는 달콤한 중독의 체제다.

다른 하나는 탄소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전 지구적 사회 현실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탄소 사회는 그저 팍팍한 고통의 체제일 뿐이다.

조 교수는 "달콤한 중독과 팍팍한 고통이라는 이중적 탄소 사회와 단절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기후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며 '인권 담론'과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두 가지 렌즈를 활용한다.

과학적 패러다임이나 기술관료적 목표 달성 논리를 넘어, 모든 시민의 민주적 참여를 통한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꾀하자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인권문제로 본다는 건 기후위기 피해를 더 이상 '천재(天災)'에 의한 불운(不運)으로 보지 않고 '인재(人災)'에 의한 불의(不義)로 보겠다는 뜻이다.

탄소 배출이 생명권·생계권·건강권·주거권 등 개인의 실질적 권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인권유린의 행위임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적은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불평등을 마주한다면, 국가와 기업에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의 1부 '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실: 어떤 성격의 위기인가'는 현재 기후위기의 성격을 묻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이어 2부 '재난은 약자의 몫이 될 수 없다: 누구 책임이며 왜 풀기 어려운가'에서 기후위기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는지 역사·정치·경제·사회·심리적으로 분석해 책임소재를 따진다.

제3부 '권리를 방패 삼아 위기에 맞서다: 어째서 인권문제로 봐야 하는가'는 천재가 아닌 인재인 기후위기에 대해 인권유린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며, 4부 '각자도생 사회를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무엇이 필요한가'는 사회적 응집력, 정의로운 전환 등 기후대응에 필요한 네 가지 사회적 차원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 5부 '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체 문제의식을 정리하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 시대에 그 배경이 형성됐다.

그리고 현재 G20 국가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가량을 배출하고 있다.

G20의 주요 국가이자 대외무역 의존도 70%,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 5위인 한국도 '기후악당국가'를 벗어나 국제사회에 책무를 져야 마땅하다.

기후행동에 대해서는 그 목표가 '지속불가능성의 해체'라며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공공성에 입각한 관점, 공동체적 가치관의 정립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언론·미디어의 역할, 보통 사람들의 기후행동 등도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의지와 공동체의 합의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일도 실행 가능하다는 걸 지금의 코로나19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이어서인지 통제불능 상태로 치달은 기후위기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5년 전 외침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단 하나뿐인 '공동의 집'인 지구를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지켜내자는 호소다.

"기후위기에 응답하십시오. 지구의 울부짖음과 낮은 이들의 부르짖음이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
21세기북스. 480쪽. 2만5천원.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