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 거부해야" 강경한 분위기 속 "협력 복원 우선" 주장도

'낙태 옹호' 바이든 당선인 바라보는 가톨릭계의 복잡한 시선
낙태를 옹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미래 관계 설정을 놓고 미국 가톨릭계가 복잡한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하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 가톨릭계 대통령이 된다.

글로벌 이슈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대통령을 우군으로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가톨릭계 분위기가 환영 일색일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톨릭 교리가 금기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낙태에 대한 입장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과거 여러 차례 자신의 신앙과는 별개로 낙태를 지지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낙태는 가톨릭 교리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죄악'으로 인식된다.

스스로를 방어할 힘조차 없는 가장 연약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환경·난민·인종 차별 등 다른 사회적 현안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견지하는 성직자라도 낙태에 대해선 강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을 포함한 가톨릭계 주류 사회는 바이든 당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

'낙태 옹호' 바이든 당선인 바라보는 가톨릭계의 복잡한 시선
미국주교회의 의장인 호세 고메스 대주교(로스앤젤레스 대교구장)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바이든 당선인을 겨냥해 '낙태 근절이라는 가톨릭계의 최우선 목표를 손상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낙태 찬성 입장을 "공공선에 심대한 위협"이라고 표현하며 "가톨릭 신자임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낙태를 지지할 경우 신자들 사이에서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에 대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미국 교계에서 영향력이 큰 보수 성향의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심지어 바이든 당선인이 '성체성사'에 참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가톨릭 일곱 성사의 하나인 성체성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몸과 피를 나누는 의식으로 모든 미사에서 비중 있게 거행되는 절차다.

다만, 한편에서는 바이든 당선인과 시작부터 각을 세우기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 아래에서 끊어진 소통 채널과 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게 우선이라는 신중한 목소리도 있다.

'낙태 옹호' 바이든 당선인 바라보는 가톨릭계의 복잡한 시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2일 바이든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소외계층 지원, 기후변화 대응, 이민자·난민 보호 등의 현안에서 상호 협력하자는 의지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주교회의는 조만간 개최될 전국 회의를 앞두고 바이든 당선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숙고할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해 논의의 향배가 주목된다.

미국 교계 일각에서는 워킹그룹이 버크 추기경의 주장대로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성체성사 거부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세하던 때인 작년 10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성당에서 거행된 주일 미사에서 영성체를 거부당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미사를 집례한 로버트 머레이 신부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성체는 주님·교회와의 일치를 뜻한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교회 가르침을 벗어나 성체를 줄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