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선천적 장애인 발언'…집단 자체 비하도 조사대상 인정
인권위, '소수자집단 비하표현' 진정 각하 않고 첫 권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의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 발언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당에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권고한 것이 사회적 소수자 집단 비하표현 관련 진정을 조사 대상으로 포용해 인용한 첫 사례로 확인됐다.

22일 이 전 대표 진정사건 결정문을 보면, 인권위는 "우리 위원회는 그동안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 비하, 모욕 등 표현행위는 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해 왔다"며 이번에는 종전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적시했다.

앞서 인권위는 민주당에 이 전 대표 등 당직자들에 대한 장애인 인권교육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권고하는 내용을 지난 8월 의결했다.

권고 결정문은 최근 민주당과 진정인 측에 송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각하란 절차상 요건이 성립하지 않아 돌려보내는 처분이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유사한 진정이 들어올 때마다 '권리 구제엔 구체적 침해나 차별을 당한 특정한 사람·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왔다.

형법과 민법이 모욕·명예훼손을 다루는 기준과 동일하다.

인권위는 이번 사건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삼았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 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32조 3항에 장애인 개인뿐 아니라 집단 전체가 포함된다고 봤다.

인권위는 "집단 자체를 모욕하거나 비하해 그 집단에 속하는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조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정문 작성에 이례적으로 석달의 긴 시간이 걸린 것도 종전 입장을 바꾸면서 논거를 새롭게 마련하느라 다수의견을 낸 인권위원들이 고심한 결과로 전해졌다.

인권위 진정사건에서도 민·형사소송처럼 형식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각하 처분해야 하며, 대신 권고 내용과 유사한 의견표명을 하자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해당 의견을 낸 박찬운 상임위원은 "각종 매체에서 장애 관련 부지불식간 일어나는 발언이 장애인 모욕에 해당한다고 진정하면 인권위로선 이 사건처럼 조사해 구제·권고 여부를 결정해야 할 텐데 그것이 과연 적정한지 의문"이라며 "향후 진정사건 처리 과정에서 우려할 만한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 '소수자집단 비하표현' 진정 각하 않고 첫 권고
인권활동가나 전문가들은 인권위 결정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진정을 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의 김성연 사무국장은 "소송 절차와 유사할 정도로 엄격함을 지켜야 한다면 법원에 가지 뭐하러 인권위에 가겠나"라며 "인권위는 좀 더 유연하게 인권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전 상임위원이자 장애인차별시정위원장이었던 정상환 변호사는 "인용 선례가 없어 타협책으로 각하하며 의견표명을 하다 보니 실효성이 없었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 취지를 생각하면 적극 인용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했다.

인권위가 장애인 비하 표현 진정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세우면서 다른 정치인들의 유사한 발언에도 비슷한 권고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장추련은 지난 1월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그런 상태로 총리가 된다면 이것은 절름발이 총리"라고 발언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키 작은 사람은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가 길어서) 자기 손으로 들지도 못한다"고 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황교안 전 대표 발언도 인권위에 진정한 상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