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하루 18시간 근무에 월급 대부분 북한 당국이 압수"
한국·미국·이탈리아 등도 구매…"유엔 제재 위반"
"영국, 北노동자 착취하는 중국 공장서 보호장비 수입"
영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처하려고 구매한 개인 보호장비를 생산한 중국 공장에 수백 명의 북한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은 '현대판 노예'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 공장과의 거래가 유엔의 대북 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 탐사 취재 결과 영국 보건사회복지부(DHSC)가 중국 단둥의 여러 공장에서 생산한 수십만 벌의 전신 보호복을 수입했으며, 이곳에 북한 노동자가 근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필리핀, 미얀마 등에도 북한 노동자가 생산에 참여한 보호장비를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노동자들은 대체로 여성으로 휴식 시간도 거의 없이 하루 18시간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속해서 감시받고, 마음대로 공장을 이탈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이 받은 급여의 70%는 북한 당국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단둥 공장의 한 관계자는 가디언에 "북한 노동자는 쉬는 날도 없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라며 "이들은 북한 당국의 통제 속에서 국가를 위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북한의 노동자 수출을 정부 주도의 강제 노동으로 보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이를 현대판 노예라고 비판한다.

영국 정부가 중국 단둥 공장에서 보호장비를 수입함에 따라 간접적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에 국민 세금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가디언이 지적했다.

유엔은 이 같은 거래를 반인륜적인 인권 침해 범죄로 금지한다.

북한의 외화벌이를 차단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도록 하는 게 유엔 제재의 목적이다.

이러한 보호장비 수입은 DHSC와 유니스페이스 글로벌 간 수급 계약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직후 보호장비 수급 계획을 세웠으며, 유니스페이스 글로벌이 주요 공급 업체가 됐다.

이 회사가 중국 무역업체와 계약하면 다시 이 업체는 북한 근로자가 배치된 단둥의 두 개 공장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물품을 생산한다고 한다.

유니스페이스 글로벌이나 DHSC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보도에 대한 질문에도 응답하지 않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전신 보호복의 포장 상자에 중국 단둥의 공장 마크가 찍힌 게 포착됐다.

또 남아공도 같은 공장에서 200만 벌을 수입했다고 광고했으며, 이보다 수량은 적지만 미국, 독일, 한국, 일본에서도 주문한 게 확인됐다고 한다.

단둥 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다른 공장 두 곳에서도 미국과 필리핀에 보호장비를 수출했다고 가디언이 밝혔다.

비즈니스·휴먼 라이트 리소스 센터의 필 블루머 사무국장은 "정부가 비상 수급 규정을 활용해 개인 보호장비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의 위험 요소도 파악하지 않은 채 계약을 맺어서는 안된다"며 "이는 결국 노동자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압록강 주변의 단둥 의류 공장들은 수년 동안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제품을 생산해왔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북한 정권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국, 北노동자 착취하는 중국 공장서 보호장비 수입"
중국 단둥의 의류 공장들은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보호장비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재빨리 설비를 정비했다.

이에 따라 올해 단둥에만 14개 업체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호장비 생산 업체로 등록했다.

단둥 지방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6월 2천100만 벌 이상의 보호장비가 생산된 것으로 집계됐다.

서류상으로는 북한 노동자가 한 달에 2천200∼2천800위안(37만4천원∼47만6천원)을 받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이 중 극히 일부만 이들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