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CFO스토리=조영일 에쓰오일 수석부사장
에쓰오일은 올 들어 3분기까지 1조1809억원의 적자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육상·항공·해운 등의 이동량이 급격히 줄어든 탓에 기름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었다.

회사가 적자 상황에 놓이면 가장 바빠지는 사람이 최고재무책임자(CFO)다. ‘조(兆) 단위’ 적자라면 더 그렇다. 금융권은 대출 회수에 나서고 신규 대출을 꺼린다.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선 CFO가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 유휴 자산을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것도 CFO의 몫이다. 여기에 주가가 떨어져 투자자들 원성까지 들어야 한다.

하지만 조영일 에쓰오일 수석부사장(60)은 일반적인 ‘적자 기업’의 CFO 모습과 달랐다. “힘드시겠다”고 말을 건넸더니 “힘든 것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때도 잘 버텼다”고 했다. 그는 “장부상 큰 적자가 났지만, 주된 이유가 원유가격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이어서 실제 현금흐름이 크게 나빠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조 수석부사장은 “작년 말 코로나 발생 직후 해외 은행의 대출 금리가 뛰어 비상이 잠시 걸렸다”며 “하지만 이후 세계 각국이 유동성 공급에 나서 금세 정상화 됐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혹시 대출이 막힐 것에 대비해 한 달간 운영자금인 4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늘 쌓아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수석부사장은 강릉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둔 1981년 12월 에쓰오일에 입사했다. 회사가 보내 준 유학(미국 시라큐스대 MBA) 기간을 포함, 다음달이면 횟수로 꼬박 40년간 한 회사를 다녔다. 이 기간 맡은 업무는 자금, 회계가 대부분이었다. CFO를 맡은 것만 8년을 넘겼다. 크게 문제 없으면 오래 사람을 쓰는 기업 문화 영향도 있고, 대규모 장치 산업의 특성 상 다소 보수적인 산업 특성 영향도 있었다.

고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IMF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원·달러 환율 변동폭을 최대 100원으로 묶어 놨는데, 매일 100원씩 환율이 뛰었다”며 “자고 나면 결제해야 할 외화 채권이 100억원 이상 늘어나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조 수석부사장은 “이러다 망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는 그나마 자금사정이 나은 편이었다”며 “다른 기업들이 아직 안 망했으면, 우리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유 산업은 공급 과잉과 부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이 있고, 당장 투자 결정을 해도 최소 4~5년 뒤에 결과물이 나와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의사결정을 할 때도 단기적인 경기 지표를 주요하게 보기 보단, 큰 흐름을 보려고 애쓴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적자, 저탄소 정책 등으로 미래가 어두워 보이지만 그는 정유 산업에 대해 낙관했다. 당장 내년부터 실적이 크게 좋아질 것으로 봤다. 근거는 여럿이다. 기름값이 저점을 찍어 올해처럼 대규모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의 공장 설비는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과거처럼 이동량이 많아지면 금세 정유사 실적도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다. 그는 “설령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늦춰지도라도 인류는 코로나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이라며 “이동량은 서서히 회복될 것이고 기름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기적 전망도 좋게 봤다.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 자동차 시대가 성큼 다가와 기름 수요가 확 줄어들 듯 하지만 완전히 바뀌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우리가 가장 참고하는 믿을만한 정보에 따르면 2035년 까지 석유 수요가 계속 늘 것으로 예상된다”며 “단숨에 에너지 수요가 바뀔 것 같지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진 않는다”고 자신했다. 또 “내가 입사했던 때도 30년 뒤에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들 했다”며 “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석유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산되고 있고 고갈될 것이란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조 수석부사장은 에쓰오일이 추진 중인 석유화학 사업에 대해서도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에쓰오일은 약 7조원을 투자해 나프타에서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정유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화학으로 다각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올해 대규모 적자 탓에 사업이 표류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지만 “코로나 탓에 잠시 늦춰진 것일 뿐 투자 계획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