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등장한 사이버가수 ‘아담’은 2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우고 TV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상 인플루언서’의 시초격인 셈이다. 최근에는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6년 미국의 기술 스타트업 브러드가 만들어낸 릴 미켈라는 28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들은 완벽한 가상의 존재는 아니다. 3차원(3D) 모델링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 인플루언서의 ‘껍데기’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챗봇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컴퓨터 그래픽과 챗봇의 결합으로 사람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속속 등장할 전망이다.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기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친구처럼 소통하는 'AI 인플루언서' 나온다

“가상 인플루언서가 방송 진행”

16일 업계에 따르면 영상 앱 ‘아자르’ ‘하쿠나라이브’ 등을 운영하는 국내 스타트업 하이퍼커넥트는 내년께 ‘디지털 휴먼 소셜 서비스’를 출시한다.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가상 인간이 활동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AI 기술 고도화를 위해 올해에만 1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하이퍼커넥트는 하쿠나라이브에서 가상 인간이 방송을 진행하게 하는 등 가상 인간을 인플루언서로 키운다는 목표다.

하이퍼커넥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실제 공연은 축소됐지만 가상 인플루언서는 전 세계 Z세대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 플랫폼 개발을 결정했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가상 인플루언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AI 기술이 무르익었다는 점도 기술 투자의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사내 벤처 스타랩스를 통해 인공인간 ‘네온’을 개발했다. 네온은 사용자와 대화까지 할 수 있는 AI 플랫폼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CJ올리브네트웍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네온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물론 은행 고객 상담 등에도 네온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AI 스타트업인 스캐터랩도 가상 인플루언서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AI와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 ‘이루다’의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 1000명 이상의 사용자가 참여했는데 첫달 대화를 100회 이상 이어간 사용자가 43%에 달했다. 스캐터랩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이루다를 가상 인플루언서로 키울 예정이다.

개인화 서비스도 가능

세계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은 빠르게 크고 있다. 캘빈클라인, 발망, 타미힐피거를 비롯한 여러 패션 브랜드가 3차원(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릴 미켈라, 조 드비르, 슈두 등 가상 인플루언서를 홍보 모델로 활용했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엔터테인먼트·마케팅 업계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힌다. 인간과 달리 시간, 장소의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어서다. 스마일게이트 등 국내외 게임업체도 가상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사업을 하고 있다.

AI 기술 발전에 따라 개인화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가상 인플루언서의 장점으로 꼽힌다. 챗봇 기술을 결합하면 사용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외모와 성격을 갖춘 가상 인플루언서와 온종일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 인플루언서는 AI 엔진과 그래픽 기술만 있으면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며 “사용자가 ‘두뇌’까지 갖춘 가상 인플루언서를 스마트폰 등을 통해 흔히 만날 수 있는 시기가 1년 내 찾아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