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휴가를 보낸 대가족이 이제 막 떠나려는 참에 동네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열세 살 소년 J.D.와 소년을 구해주고 같이 분해하는 가족들. 정이 깊은 대가족의 따뜻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내 가족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빨리 짐을 챙기라고 재촉하는 엄마 베브(에이미 애덤스)는 열세 살에 임신해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오하이오 미들타운에 정착한 외할머니(글렌 클로스)를 날카롭게 비난한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한 마을에서 굳이 따로 살고, 베브는 매번 애인이 바뀐다.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약물 중독에 빠져버린 베브는 J.D.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오하이오 주립대를 나와 예일 법대에 진학해 가족 중 유일하게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탄 J.D.가 회고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중요한 면접을 앞둔 그는 엄마가 또 헤로인 중독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에 10시간을 운전해 고향으로 향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주인공이자 원작자 J.D. 밴스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두메산골 촌뜨기'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힐빌리'(hillbilly)는 미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계층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힐빌리 출신인 밴스는 2013년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3년 만에 내놓은 회고록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책은 이듬해 국내에도 소개됐다.
책은 단순히 불행한 성장 환경을 딛고 성공한 젊은 벤처 자본가가 미화하는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이 처한 무기력한 상황을 낱낱이 드러낸다.
계급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의지 문제로 돌리는 한계가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책으로 꼽기도 했다.
영화 역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J.D.가 처했던 암담하고 처참한 환경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약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엄마 대신 자신을 감싸준 외할머니와 누나가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J.D.다.
그가 상처와 부담일 뿐인 가족의 굴레를 끝내 져버리지 않은 것이 의문일 정도다.
끝내 '개천에서 난 용'이 된 젊은 사업가의 이야기는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미드 '왕좌의 게임'을 집필한 버네사 테일러가 각본을 쓰고,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미국 대중이 사랑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스토리'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