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사태를 풀 방안이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2일 영국의 채널4·미국의 CNN 방송에 따르면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라마 10세)은 전날 밤 왕궁 내에서 불교 행사를 마친 뒤 수티다 왕비와 함께 밖으로 나와 수천 명의 지지자를 만나며 격려했다.
왕실 지지자들이 방콕 도심에 이렇게 대규모로 모인 것은 반정부 시위 사태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이 과정에서 두 방송사와 최근의 반정부 시위 사태와 관련해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태국 왕실은 그동안 반정부 시위 사태와 관련해 언론 질의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CNN 방송은 올해 68세인 와치랄롱꼰 국왕이 외국 언론과 인터뷰에 응한 것은 왕세자 시절이던 1979년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와치랄롱꼰 국왕이 이날 '이례적'으로 해외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거리로 나와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채널4 기자 질문에 "노 코멘트"(할 말이 없다)라고 답했다가, 곧바로 "우리는 그들을 똑같이 사랑한다"(We love them all the same)이라는 말을 영어로 세 차례 반복했다.
국왕은 또 "타협의 여지가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태국은 타협의 땅"(Thailand is the land of compromise)이라고 역시 영어로 언급했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이 발언 이후 지지자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국왕 내외와 함께 있던 시리완나와리 공주가 두 방송사 카메라 앞으로 와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태국 국민을 사랑한다"고 언급했다.
영상을 보면 이 직전 국왕이 공주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시리완나와리 공주의 발언 역시 와치랄롱꼰 국왕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채널4와 CNN은 '타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국왕의 발언이 장기간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빠져나갈 방안이 있음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태국에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야당 퓨처포워드당(FFP)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강제해산 된 직후인 2월 중순 반정부 집회가 시작됐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3월 들어 중단됐다.
7월 중순 재개된 반정부 집회는 쁘라윳 총리 퇴진은 물론 그동안 금기시됐던 군주제 개혁 요구까지 분출하면서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국왕이 신성시되는 데다, 최장 15년형에 처할 수 있는 왕실 모독죄가 존재하는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 요구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어서 파장이 컸다.
시위대는 400억 달러(한화 약 45조8천억원)로 추산되는 왕실 자산에 대한 공공 감독 강화, 왕실 모독죄 폐지, 국왕의 쿠데타 지지 및 정치 개입 금지 등의 '개혁'이 이뤄져야 진정한 입헌군주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왕당파는 이를 개혁이 아닌 '군주제 전복 시도'라고 비판하며 최근 거리 행진 등을 통해 반정부 시위에 맞불을 놓고 있어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