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활동 그만두는 고3 때도 '상실감 느끼시지 않을까' 봉사 이어가
대학생 이도현씨와 95세 6·25 참전용사 이선우 어르신

"어르신께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학생'이 아닌 '도현아'라고 불러주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
경기북부보훈지청이 주관하는 나비 봉사단은 형편이 어려우신 고령 국가유공자들을 초·중·고·대학생들이 1대1 결연을 하고 매월 1회 이상 반찬을 가져다드리며 말벗도 돼 주는 봉사 프로그램이다.

[#나눔동행] 봉사점수 받으려 시작된 인연…청년과 구순 참전용사의 10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2년 이 봉사활동에 참여한 이도현(24)씨는 대학 진학을 위한 봉사 점수가 필요해 학교에서 거의 떠밀리다시피 시작한 여러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처음 결연을 하고 댁에 찾아가 만난 고양시 거주 6·25 참전용사 이선우(95) 어르신은 무뚝뚝하고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반찬을 가져다드려도 짧게 답례만 할 뿐 딱히 고마운 기색도 없었다.

"워낙 힘든 삶을 사셨고, 당시 부인이 거동을 거의 못 하셔서 다른 사람과 교류할 여력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거의 말을 안 하시고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습니다"
도현씨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와 반찬만 건네고 집을 나서면 임무 완료. 봉사 점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3학년이 되자 함께 봉사를 시작했던 친구들은 모두 그만뒀다.

'고3이 무슨 봉사?'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분위기였다.

도현씨도 그만두려 했지만 어렴풋하게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해외봉사자들이 활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남은 현지인들은 큰 상실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그 말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특별한 사명감이나 봉사·희생정신은 전혀 없었다"는 이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뵙는 정도로 학업에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친구들과 달리 고3 때도 매달 어르신을 찾아뵀다.

[#나눔동행] 봉사점수 받으려 시작된 인연…청년과 구순 참전용사의 10년
고등학교 졸업 후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도현씨는 전공 공부를 하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했다고 한다.

정신없는 새내기 생활을 하면서도 일상처럼 매달 어르신 댁을 찾았다.

그러던 4∼5년 전 어느 날. 평소처럼 집에 찾아뵙기 전 전화를 드려 "반찬 학생입니다"고 말하자 이선우 어르신께서 처음으로 물었다.

"넌 근데 이름이 뭐니?"
그날부터 유공자 어르신에게 '반찬 학생'은 '도현이'가 됐다.

살갑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도 털어놓으셨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어르신이 6·25 참전 무공수훈자라는 사실도 이맘때 본인에게 듣게 됐다.

"1개월 육군 훈련소 입소를 해야 해서 다음 달 못 찾아뵙는다고 했더니 요즘 군대가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도현씨는 이때 어르신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고 회상했다.

[#나눔동행] 봉사점수 받으려 시작된 인연…청년과 구순 참전용사의 10년
이후 지금까지 근 10년간 도현씨와 이선우 어르신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만난 도현씨는 봉사의 기쁨과 의미 등에 관한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봉사활동을 한다는 의식도 별로 없다"는 그는 "다만 어르신이 마음을 열어 주시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기분이 좋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경기북부보훈지청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더구나 고등학생이 고령 보훈 대상 어르신과 이렇게 오래 결연을 하고 봉사를 이어가는 일은 거의 없으며 모범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나눔동행] 봉사점수 받으려 시작된 인연…청년과 구순 참전용사의 10년
이선우 어르신은 지난해 아내와 사별하고 현재 혼자 지내고 있다.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시는 어르신은 반찬뿐만 아니라 생활 여러 부분에서 도현씨에게 의지한다.

최근에는 어르신의 부탁으로 도현씨가 강아지를 입양해 드리기도 했다.

도현씨는 "연세도 많으신 어르신이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