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주들 "시 홍보 수단일 뿐, 이대로라면 아무도 이어받지 않을 것"
과거 80여개, 이제 35개만 명맥 유지…최근엔 코로나로 발길마저 뚝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지요.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방문객이 늘고, 골목이 활성화되는 것 아닌가요?"
28일 오전 부산 보수동책방골목.
골목 초입에 들어서자 공사 현장임을 알리는 천막과 철근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얼마 전 해당 부지에 한 건설업체가 근린생활시설을 세울 계획에 착수하자 서점 7곳이 한꺼번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책방 점주들을 비롯해 인근 상인들은 정부, 부산시 등 당국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책방골목이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지만, 각각의 서점이 생존력을 잃어가면서 골목 전체가 무너지지 않을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국전쟁 피난민이 생활과 공부를 위해 책을 사고팔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이 골목은 최근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BUSAN' 편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시 역시 '부산 미래유산'으로 지정했고, 각종 홍보영상과 방송 프로그램 등으로 일주일에 3∼4번씩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르포] 보수동 책방골목, 미래유산 맞나요?…점주들 "곧 사라질 유산"
그러나 인근 상인들은 관할 당국이 홍보에만 집중할 뿐 책방골목이 자생할 수 있는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허양군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회장은 "지자체 등에서 책방골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부산 미래유산'으로 선정하다 보니, 대중들도 이에 따른 재정 지원이 잘 이뤄진다고 많이 오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지원이 없다 보니 오히려 고령인 점주들은 폐업 여부를 고민할 지경"이라며 "책방골목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꾸려졌던 구청 TF팀이 무산되면서 골목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계속된 경영난과 재개발 등으로 과거 80여 개였던 책방들도 이제는 35개밖에 남지 않았다.

[르포] 보수동 책방골목, 미래유산 맞나요?…점주들 "곧 사라질 유산"
더구나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관광 수요 자체가 줄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긴 상태다.

점주들은 부산시와 정부 등 지원으로 각 서점이 실질적으로 자생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 회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월세, 청년 창업 지원 등으로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이 확보돼야 다음 세대도 책방을 이어받으려 할 것"이라며 "윗대부터 그동안 일궈온 골목의 역사가 없어지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한 점주는 "꽃이 예쁘다고 외양만 가꿀 게 아니라 물을 주고 계속해서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특유의 분위기와 역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포] 보수동 책방골목, 미래유산 맞나요?…점주들 "곧 사라질 유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