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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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의 부음을 들으면, ‘한 시대가 저물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고인의 위대함이 클수록 그런 느낌도 짙어진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거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런 느낌이 먼저 들었다. 이어 향수가 가슴에 번졌다. 삼성의 역사와 이 회장의 행적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으리라.

그는 같은 세대에 속한 한국 기업가들을 대표했고 이끌었다. 기업의 역사가 짧은 터라서, 우리 사회에선 성공적 기업가들의 세대 구분이 뚜렷하다. 식민지 시기 말엽과 해방 바로 뒤의 척박한 풍토에서 기업들을 성공적으로 키운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조중훈, 신격호와 같은 분들이 한국 기업인 1세대다.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기업인들이 이 회장 세대였고 대체로 한국 기업가 2세대라 불린다.

창업 어렵지만 성장이 더 어려워…이건희, 창업주 업적에 견줄만

왕조든 기업이든, 창업과 수성의 상대적 어려움에 대한 논의가 늘 나온다. 일반적으로 창업이 어렵지만, 우리 사회에선 기업의 성장이 어렵고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의 규제와 사회적 반감이 커져서, 수성이 유난히 힘들다. 그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이 회장의 업적은 삼성이 흥기할 바탕을 놓은 부친 이병철 회장의 업적에 견줄 만하다.

그런 업적은 삼성이 국내 기업에서 국제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식민지 시기에 일본을 통해서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진행됐다는 역사적 사실과 우리 사회의 발전이 일본 사회의 발전과 비슷했다는 사정은 우리 1세대 기업가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수월하게 했다. 일본에서 호황을 누리는 업종들을 살피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 사회에서 유망할 업종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속한 2세대 기업인들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야 했다. 그래서 익숙하고 상당히 보호된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던 기업들은 전략과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꿔 해외 시장의 상황과 표준에 맞춰야 했다. 그런 변신이 쉬울 리 없었고 우리 기업들은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적응해야 했다. 그런 적응에 성공해서 세계적 기업들을 키운 2세대 기업가들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들 가운데 우뚝 선 사람이 이 회장이었다.

이제는 나이 든 사람들도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시 이 회장의 분투는 그런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국제 시장으로의 진출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시행착오만 늘어가자 온 사회에 불안감이 커졌다. 크고 좋은 시장엔 선진국의 능력과 평판이 뛰어난 대기업들이 이미 자리를 잡았으므로, 자본 기술 평판이 모두 부족한 우리 기업들은 변두리의 위험하고 척박한 시장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좌절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진 나라들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짓눌렸다.

1990년대 이건희의 '개혁 운동'…전 국민의 관심과 호응 불러

이런 위기 속에서 이 회장의 개혁 운동이 나왔다. 1990년대 초엽 그는 로스앤젤레스, 도쿄, 프랑크푸르트, 런던과 같은 해외 주요 도시로 간부들을 불러 회의를 하면서 위기의 원인들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다. ‘우리 기업들이 이대로 나가면 큰일나며 다시 태어나야 21세기에도 살아남는다’는 얘기는 삼성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의 삼성 개혁운동은 비상한 관심과 호응을 불렀고 ‘이건희 신드롬’이란 말까지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그가 한 얘기들은 그가 상황을 잘 파악했고, 미래 환경을 잘 예측해서 적절한 전략을 제시했으며, 그런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될 것들을 잘 짚어냈음을 깨닫게 된다. ‘직원들의 도덕심을 높이고 관료주의를 줄여서 개혁의 바탕을 마련한 다음, 기업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최고의 질을 추구하고 국제화와 복합화를 통해 효율을 높인다’는 전략은 그가 뛰어난 기업가였음을 확인해준다.

그리고 그는 개혁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회의적 견해와 노골적 비판이 삼성 안팎에서 나왔지만, 그는 그런 비판과 저항을 예상하고 대응했다. 그의 대응에서 지금도 내 얼굴에 미소가 배어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그가 자신의 전언을 걸맞은 방식으로 전달했다는 점이다. 간부들을 해외로 불러서 자사 제품들이 해외 시장에서 받는 서글픈 대접을 실제로 보게 하고 그 자리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는 이전에 사람들이 듣고서 흘려버린 전언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했다. 마셜 머크루언의 “매체는 전언이다”라는 명제를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적용한 셈이다. 이어 그는 자신의 전언을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지 못할 얘기로 바꾸었으니, “아내와 자식을 빼놓곤, 모두 바꿔보자”는 말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삼성, 세계적 기업으로 변신…사업보국 이어받아 나라도 발전

이런 개혁을 통해서 삼성은 세계적 기업으로의 힘든 변신을 이뤘고, 삼성전자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리고 삼성의 성공에 자극받아 다른 기업들이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이 2세대를 대표했다는 얘기는 그가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는 사실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삼성이 효과적으로 적응하도록 애쓰는 사이, 그는 창업자인 부친의 기업 철학인 ‘사업보국’을 이어받아 충실히 실천했다. 기업가가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은 물론 성공적 기업을 키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다. 이 회장은 그런 수준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썼다.

나로선 이 점에 대해서 가장 큰 감탄과 감사의 마음을 품는다. 자유주의 시민운동을 해본 사람은 모두 절실히 느껴온 터겠지만,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일에서 삼성은 특히 마음을 썼다. 무난한 예를 하나 들자면, 삼성이 유난히 많은 스포츠 단체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있다. 손익으로만 따지면 삼성은 너무 많은 단체를 후원하고 구단을 운영한다. 그러나 시장이 아주 작은 우리 처지에서 삼성의 참여 여부는 그 종목의 성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국제대회를 유치하려면 국내 시장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삼성이 참여하게 된다.

이 회장이 삼성 개혁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일에 대해 ‘꿈과 책임’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미국 소설가 델모어 슈어츠의 단편소설 제목 ‘꿈속에서 책임은 비롯한다(In Dreams Begins Responsibility)’를 인용한 것이었다. 나에게 그는 꿈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위대한 기업가 시대는 저물지만…우리 가슴은 그를 잊지 못할 것

큰 기업을 이끌면 큰 권력이 자연스럽게 따른다. 물론 기업가들은 그런 권력을 즐기지만, 대부분의 기업가는 권력 자체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권력을 기업을 키우고 지키는 데 따르고 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이 회장은 그런 특질이 두드러진 것처럼 나에겐 보였다.

그는 신문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자신이 어려서부터 혼자 지냈으며 친구도 많지 않다고 고백했었다. 그가 즐긴 운동은 승마와 스포츠카 운전인데, 둘 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그의 매력 가운데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어눌한 말씨로 핵심을 짚는 모습이었는데, 그런 모습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어쨌든, 나는 그가 꿈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느꼈다. 그래서 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따르는 책임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는 21세기의 세계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된 삼성을 다듬어내는 꿈을 품었고 삼성 사람들에게 그런 꿈을 보여줬다.

그러나 꿈은 흔히 환상으로 판명된다. 환멸은 꿈을 꿨던 사람들에게 잔인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롭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이루자고 설득한 사람에겐 어쩔 수 없이 실제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 나는 꿈이 위험한 물건이라고 그에게 경고하고 싶었다.

복 거 일
소설가/경제평론가
복 거 일 소설가/경제평론가
이제 삼성은 20세기에 우리가 한껏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기업이 됐다. 이 회장은 꿈을 이뤘고 꿈에 따른 책임을 완수했다. 우리 가슴에 이는 향수의 시린 물살은 그 위대한 기업가가 활약했던 시대가 저물었음을 확인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