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6·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 사안은 국제적으로 이미 논쟁이 끝난 문제”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중국 측과 필요한 소통 및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은 23일 6·25 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제국주의(미국)의 침략 확장을 억제했다”며 북한의 남침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어서 이목을 끌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시 주석의 발언은 1차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을 향해 ‘우리 편에 서라’며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했다. 중국 지도자의 6·25 참전 기념 연설은 2000년 장쩌민 주석 이후 20년 만이다.
미·중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로 일관해 온 우리 정부는 시 주석 발언이 나온 당일 유감 표명이나 항의 한마디 없이 침묵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같은 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시 주석 발언에 대해) ‘적절하다’ ‘아니다’ 평가하는 건 외교적 관례가 아니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이에 외교가에선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외교부가 24일 오후가 돼서야 시 주석의 발언을 반박하는 입장문을 낸 것은 이 같은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전략성 모호성’ 기조를 유지한 탓에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연일 중국과의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북·중 관계가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특별한 관계로,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불패의 친선으로 강화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2일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중국군 묘소)을 참배하기도 했다. 향후 있을 미국 차기 정권과의 협상에 대비해 우군인 중국과의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