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시가 추진 중인 영랑호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을 놓고 시민사회에서 전개되는 찬반 갈등을 계기로 동해안 석호(潟湖)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속초시는 북부권 활성화를 위해 총사업비 40억원 규모의 '영랑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이 사업은 길이 400m와 50m의 부교 설치, 연장 665m의 호숫가 데크로드 설치, 범바위 경관조명과 야외체험학습장 설치, 스마트 조류관찰대와 건강길 설치 등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 사업을 놓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과 보존해야 할 자연 석호의 생태계만 파괴할 뿐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속초시는 찬성 의견을 받아들여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과 시민들의 모임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사업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영랑호 개발에 대한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속초시와 시민, 시민과 시민이 분열하는 현상까지 빚어지자 지역에서는 석호 관리에 관한 법규제정 등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석호는 파도나 해류의 작용으로 해안에 생기는 사주(砂洲)와 사취(砂嘴)로 입구가 막혀서 생성된 자연호수다.

민물과 바닷물이 혼재된 기수호로 주변에 잘 발달한 습지로 생물종이 풍부하고 멸종위기종 서식지와 조류 번식지로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생태자원이다.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수많은 철새의 도래지이자 중간기착지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천이 과정에서 늪지화를 거쳐 이미 사라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개발행위 등으로 인해 면적이 감소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석호도 상당수 있다.

이에 원주지방환경청은 2015년 동해안 석호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복원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원주지방환경청은 강릉과 속초, 양양, 고성 등 동해안 4개 시군을 비롯해 기업과 학교, 환경단체 등 18개 기관·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동해안 석호 살리기 캠페인 협약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현재 동해안에 남아 있는 석호는 18개에 불과하다.

이들 가운데 고성군의 선유담과 강릉시의 풍호 등은 늪지화와 개발행위로 인해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나머지 석호들도 계속되는 주변 지역 개발행위로 인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강릉 순포습지가 복원돼 어느 정도 원형을 되찾고 문화재보호법 등이 적용돼 개발행위가 제한되는 경포와 매호 등 일부 석호는 자치단체의 관리가 이뤄지면서 상황이 악화하지는 않고 있으나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호수들은 개발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속초시가 호수를 가로지르는 부교를 설치하겠다는 영랑호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영랑호의 경우 2011년 수상스키 동호인들의 레저행위를 놓고 환경단체와 동호인단체, 속초시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16년까지 6년간 이어진 이 갈등은 결국 소송으로 비화했으며 1심에서 패소한 속초시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영랑호에서 수상스키 활동은 허용됐다.

따라서 영랑호 보호에 나선 환경단체와 시민들은 레저활동 허용에 이은 부교 설치는 석호 보존에 치명적이라며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속초시는 북부권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반대의견을 수렴, 당초 검토했던 목교를 부교로 바꾸는 등 환경부분을 고려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최종현 속초시의회 의원은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석호에 관한 법률이 없어 영랑호에서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며 "자연환경보전법이나 습지보전법에 석호를 보호지역으로 분류해 보존과 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