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은 사상 첫 ‘심야 열병식’이라는 점 말고도 행사 내용 면에서 파격적이고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행사장에 입장하는 순간에는 하늘에 화려한 불꽃과 폭죽이 연달아 터지며 극적 효과를 높였다. 발광다이오드(LED)를 날개에 장착한 전투기들의 에어쇼도 과거 열병식에서는 찾기 힘든 장면이었다.
김정은은 앞서 지난 8월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며 “모든 경축 행사를 최상의 수준에서 특색 있게 준비해 당 창건 75돌에 훌륭한 선물로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신형 무기 공개로 대내외에 군사력을 과시하고, 흐트러진 내부 체제 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김정은 지시로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인물로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사진)이 거론된다. 김여정은 지난 7월 10일 미국에 보낸 담화에 느닷없이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하는 데 대해 (김정은)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는 모호한 내용을 담았다. 김여정의 이 담화는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긍정적인 유화 메시지로 읽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미·북 대화에 진전이 없었던 데다 심야 열병식이 열리면서 이 행사를 기획한 김여정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를 참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7월 4일 미 독립기념일 행사에선 해·공군의 화려한 에어쇼와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