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한 범행 속 무너진 선악의 경계…영화 '소리도 없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없이 생계 수단으로 범행을 벌이는 '근면 성실한' 범죄자들. 그런 와중에 인간에 대한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이들의 행동은 선일까 악일까.

영화 '소리도 없이'는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신창복(유재명)과 그를 돕는 말이 없는 태인(유아인)이 유괴된 아이 초희(문승아)를 억지로 떠맡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영화는 시체유기와 아동유괴라는 끔찍한 사건들을 평범한 일상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평온하게 묘사한다.

창복과 태인은 여느 직장인들이 회사에 가듯 일터에 간다.

그곳에서 무덤덤하게 사람을 천장에 매달고, 고문 도구를 청결히 준비한다.

시체를 인계받은 후에는 풍수지리까지 따져 정성스럽게 매장한다.

무감각한 범행 속 무너진 선악의 경계…영화 '소리도 없이'
이들은 악의가 없다.

어찌 보면 소탈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이웃과 닮아있다.

심지어 성실하다.

창복은 "주어진 일에 감사해라", "기도해라"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신실한 신자다.

태인은 위험에 처한 초희를 구하러 달려가는 영웅적인 면모까지 보인다.

이 때문에 창복과 태인이 벌인 일들은 범죄임이 분명한데도 관객들은 이들이 악한 사람이 아니란 점에 점점 집중하게 된다.

이들이 의도치 않게 휩쓸린 범행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안쓰럽고,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연민이 선으로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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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소재와는 다르게 감성적인 색감이 영화 전반에 깔린 것도 모호함을 더한다.

한여름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벼가 펼쳐진 대낮의 농촌 풍경부터 유괴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공간을 감싸는 분홍빛까지. 이런 감각적인 색감이 범죄의 경계를 허문다.

영화는 선악의 판단을 유보한 채 복잡한 현실 속 무감각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한다.

연출을 맡은 홍의정 감독이 당초 고려했다는 제목 '소리도 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에서도 이런 의미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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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도 극적이지 않아 현실감을 더한다.

대사 없이 몸짓과 앓는 소리로 감정을 드러내는 유아인과 끊임없는 대사에 고민과 불안을 담아낸 유재명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진다.

이야기 자체는 짜임새 있다.

심각한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등장인물의 대사나 배경도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오는 15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