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열심히 '일하는 국회'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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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임대차法 갈등 조장
고질적 부실 의원입법 탓
법안 심사 건당 2분26초
시장혼란·국민고통 키운 국회
이럴 바엔 '일 안 하는 게…'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고질적 부실 의원입법 탓
법안 심사 건당 2분26초
시장혼란·국민고통 키운 국회
이럴 바엔 '일 안 하는 게…'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차병석 칼럼] 열심히 '일하는 국회'가 두렵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10/AA.24007994.1.jpg)
이런 갈등과 대립은 임대인과 임차인을 편 가르는 정책이 주원인이지만 법 자체가 엉성하게 고쳐진 탓도 크다.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전세계약 갱신을 원하는 임차인을 내보낼 때 2년 내 새 세입자를 들이면 안 되고 집주인이 실거주하도록 했다. 그러나 집주인이 몇 개월 살다가 집을 팔아도 되는지에 대해선 규정이 없다. 상가임대차보호법도 감염병 등을 이유로 임차인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게 했지만 감면폭과 기간은 명시하지 않았다. 법의 이런 허점을 둘러싼 실랑이는 법원까지 가야 한다.
모두 국회가 충분한 여론 수렴과 검토 없이 법 개정을 서두른 결과다. 더 심각한 건 부실 입법을 한 국회의원들이 책임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하는 국회’를 구현했다고 자랑한다. 그게 더 문제다. 상당수 의원은 열심히 일한 실적으로 입법 발의 건수를 내세운다. 일부 시민단체도 법을 몇 개 발의했느냐로 의원들을 줄세운다. 의원입법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규제 심사와 공청회 생략을 노린 정부의 청부입법이 늘어나는 이유다. 지난 20대 국회 4년간 발의된 의원입법만 2만3047건이다. 19대의 1만6729건에 비해 37.8% 많다.
21대 국회는 아예 ‘입법 중독’ 수준이다. 임기 시작 4개월여 만에 4085건(7일 현재)의 법안을 발의했다. 300명 국회의원 1인당 14건꼴이다. 현행 법률 1480개의 세 배에 달한다. 이런 속도면 21대에 의원입법 발의가 20대를 두 배 이상 앞지르는 5만 건에 육박할 전망이다. 의원 간 입법 경쟁이 불붙으면 폐기 법안을 재탕 삼탕하거나 자구 하나만 쉬운 말로 고치는 ‘알법(알기 쉬운 법)’, 특정 위원회를 모든 정부기관에 두자며 각 기관법마다 이를 추가하는 ‘복붙법(복사해 붙인 법안)’ 등이 판친다. 오죽했으면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법 같지도 않은 법이 너무 많다”고 개탄했을까.
법을 벽돌 찍듯이 양산하다 보니 졸속인 건 당연하다. 법률연맹이란 입법 감시단체가 20대 국회의 24개 법안심사소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다. 4년간 연 회의는 634회, 회의 시간은 총 1758시간13분이었다. 여기서 심사한 법안 수는 누계로 4만3453건. 법안 한 건당 평균 2분26초 심사한 셈이다. 제·개정 내용을 한 번 읽어보기도 모자란 시간이다. 입법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법안심사소위가 이 정도면 상임위와 본회의는 볼 것도 없다.
아이러니컬한 건 의원들이 입법을 늘릴수록 국회가 아니라 행정부 권한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국회 입법의 양적 확대는 필연적으로 질적 저하를 초래해 정부의 시행령과 유권해석이 더욱 중요해져서다. 주택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국토교통부가 해설집을 세 번이나 내고 유권해석 문의로 법무부 전화통에 불이 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은 대충 만들어 놓고, 정부 재량권을 키워주는 것은 입법부의 자세가 아닐뿐더러 법치의 정도(正道)도 아니다.
법은 강제력 있는 규범이란 점에서 대부분이 규제다. 규제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제한하고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한 번 생기면 없애기도 어렵다. 입법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더 열심히 일하겠다며 아예 ‘일하는 국회법’을 당론 1호 법안으로 정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자구심사권을 폐지하고 본회의 개최를 늘리는 게 골자다. 더 많은 법을 제·개정하겠다는 얘기다. 마구잡이로 쏟아낸 법들은 시장을 흔들고 국민 갈등만 부추긴다. 이럴 바엔 차라리 ‘일 안 하는 국회’가 낫다.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