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설서 마약 조직간 다툼에 원인 돌려…인권단체 "책임 모면하려는 가짜 뉴스"
수천 명이 사망한 '마약과의 전쟁'을 밀어붙이며 수차례 "마약범은 죽여도 좋다"고 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돌연 말을 번복해 비판을 받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7일 일간 필리핀스타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5일 밤 녹화 방영된 TV 연설에서 "많은 이들이 내가 법의 지배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누구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바오 시장으로 공직에 재직한 이후 마약왕 용의자들이나 상습범들에 대해 재판 없이 사살하는 초법적 처형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함께 일한 관리들은 물론 에두아르도 아노 내무부 장관이나 델핀 로렌자나 국방부 장관 같은 오랜 친구들도 이를 입증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잔혹한 죽음들을 한번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일부 마약상들이 조직간 경쟁 관계에서 또는 마약을 판 돈을 훔치려다 죽었을 수 있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건 아니건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며 "범죄자나 군인과 경찰관들이 죽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초법적 처형이 마약 조직간 충돌의 결과라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성명을 통해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직후 진행된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경찰 내 살인자들에서 마약밀매조직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가짜 뉴스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필리핀 경찰청은 최근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으로 올해 7월 말 현재 5천810명이 목숨으로 잃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단체는 마약 단속 과정에서 초법적 처형 등으로 희생자가 2만7천명에서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압수한 각종 마약이 과거처럼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빼돌려져 재판매되지 않도록 일주일 내로 증거를 위한 소량만 남기고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