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회가 많은 시대를 꿈꾼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가 남긴 명언이다. 원래 ‘아픈 사람이여, 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뜻으로 키케로가 병약한 자신의 삶에 대한 열망을 토로한 말이라고 한다. 지금은 ‘삶=희망’을 상징하는 메시지로 통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무섭게 바꿔놓고 있다. 가슴 아픈 건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등 인간의 존엄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대에 기회를 잃거나 기회를 찾을 수조차 없는 이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에 있을 때 공영방송인 P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교도소 애완동물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도소 수감자들이 단지 몇 ㎡밖에 되지 않는 감방에 갇혀 있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게 아니라 희망이 없다는 사실에 더 좌절한다는 것을 알게 된 어느 교도소장이 기발한 방법으로 수감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1981년 폴린 퀸이라는 수녀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수감자들이 애견 트레이너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도우미견’을 훈련시키고, 이 도우미견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이웃에 무료로 입양해 주는 내용이다. 이때 수감자들이 훈련시키는 개들은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유기견이다.

유기견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수감자들은 자신들이 훈련시킨 개가 입양되는 날 이별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자신도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애완동물 관련 직업 기술을 배울 기회가 주어져 출소 후에는 해당 분야에 취업까지 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여성 범죄자 재활 분야의 모범으로 뽑혀 1986년 포드재단과 하버드대 케네디경영대학원이 운영하는 정부의 10대 혁신 프로그램 결선 진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 재소자들은 재범률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한다. 자신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사회도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새로운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기견에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기회가 생겼고, 수감자에게는 희망을 품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도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하다. 동물보호소에 수많은 유기견이 들어 있는 케이지를 비춘 마지막 영상은 “여기에 있는 모든 유기견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기회는 희망의 출발점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는 사회야말로 희망이 있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간절히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