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교육 기부 프로그램 ‘KSOP’ 멘토로 활동 중인 이창민 씨(전산학부 1학년)가 지난 22일 열린 KSOP 온라인 학습멘토링 오리엔테이션에서 줌(zoom)을 통해 멘티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KAIST 교육 기부 프로그램 ‘KSOP’ 멘토로 활동 중인 이창민 씨(전산학부 1학년)가 지난 22일 열린 KSOP 온라인 학습멘토링 오리엔테이션에서 줌(zoom)을 통해 멘티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원래 수학을 좋아하다 ‘무조건 외워’라고 강요하는 학교 때문에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는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에게 여러 수학 이론의 (태동) 원리와 역사를 알려줬어요. 굉장히 흥미로워하면서 ‘이제 수학이 다시 재밌어질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 혼자만 재밌어 한 게 아니고요…. 정말입니다.”

지난 22일 오후 3시 유튜브로 진행된 2020년 2학기 KSOP(KAIST 사이언스 아웃리치 프로그램) 학습멘토링 오리엔테이션. KAIST 전산학부에 다니면서 KSOP의 중·고교생 멘토로 활동 중인 이창민 씨가 이렇게 말하자 채팅창에서 ‘오~’라는 환호성이 일제히 터졌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KAIST가 진행 중인 과학기술나눔운동 ‘스마트 스마일’의 일환으로 2시간여 진행된 이번 행사엔 중·고교생 52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본격 행사에 앞서 KAIST 건설및환경공학과 소속 조훈 강사가 KAIST 교내 곳곳을 보여주며 설명하자 ‘오 신기하다’ ‘ KAIST 클라쓰!’ ‘진짜 가고(입학하고) 싶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과학기술특성화대 진학 지름길 KSOP

KAIST 학생들이 멘토…중·고교생에 과학기술 '랜선 나눔'
KSOP는 KAIST가 취약계층 중1~고1 학생을 대상으로 2015년부터 진행 중인 교육기부 프로그램이다. KAIST 재학생들이 수학, 과학 학습멘토로 나서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진로 상담도 해 준다. 지난해까지 중·고교생 2370명을 선발해 혜택을 줬고 올해도 300명을 새로 선발했다.

KSOP는 KA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 진학으로 이어지는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씨 역시 KSOP 1기로 참여해 KAIST에 입학한 경우다. 이씨는 “교과 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수많은 KAIST 선배를 만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 진로 계획이 굉장히 구체화된다”고 소개했다.

KSOP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매월 2회씩 주말 등을 통해 2~4시간씩 수학 과학 온라인 교육을 받는다. 방학 땐 오프라인 캠프에 참여한다. 2018년 KSOP 여름캠프에선 △토네이도 원리 실험 △밸런싱 봇 만들기 △레이저 경보 시스템 제작 △춤추는 레이저 머신 제작 △인공지능 스피커 만들기 등 실제 연구개발과 함께 △리더십 특강 △동아리 활동 △멘토-멘티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됐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화상회의 솔루션 줌(zoom)을 이용한 분반별 멘토-멘티 만남이 이뤄졌다. 기자가 직접 한 방에 들어가 이들의 아이스 브레이킹 활동을 참관했다. 각자 자기소개가 끝난 후 멘토로 나선 KAIST 1학년생 안대현 씨가 화학적 공유 결합 등을 언급하자 멘티 학생 10여 명이 특별한 호기심을 보였다. 안씨는 “나도 사실 수학과 과학을 못했지만 KSOP에 참여하면서 실력이 탄탄하게 쌓였다”고 학생들을 독려했다.

과총 ‘사이언스 오블리주’ 전파에 주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역시 올해 스마트 스마일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멘토링 프로그램 ‘2020년도 청소년과학영재사사(師事)’를 시작했다. KSOP와 다른 점은 대학 학부생이 아니라 석학급 또는 젊은 교수가 멘토로 나선다는 것이다. 최진호 단국대 석좌교수,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손소영 연세대 교수 등 17명과 안종현 연세대 교수, 이진우 KAIST 교수, 김수영 고려대 교수 등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 13명 등 총 30명이 멘토단으로 참여했다. 멘티는 영재고 및 과학고, 일반고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 산간 도서지역 등 학생들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지난달부터 5개월간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 만족도는 높다. 평소 뇌과학과 컴퓨터공학에 관심이 많던 경북 구미 경구고 A학생은 안종현 연세대 교수(전기전자공학부)의 멘토링으로 학습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A학생은 “교수님께서 일론 머스크(테슬라 및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의 뉴럴 링크 발표 영상을 추천해 주셔서 봤는데, 뇌와 척수를 다친 사람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분야라고 느꼈다”며 “뇌파 측정 기술, 뇌질환 치료 기술, 휴먼-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마트 스마일 캠페인은 지난 2월 취임한 이우일 과총 회장이 내세운 ‘사이언스 오블리주(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무 실현)’ 정신에 따라 시작된 과학기술계의 나눔 운동이다. 학생들에게 ‘스마트한 학습 기회’를 제공해 미소를 짓게 하자는 취지에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PC·노트북·스마트패드 등 학습용 기기 기증, 학습 멘토링, 중소기업 애로기술 자문, 찾아가는 수학 과학 강연, 과학기술 팩트 체크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는 '사이언스 오블리주' 시대" 이우일 과총 회장 강조

스마트 기기 기증으로 과학기술 나눔 확산
기술지원 'SOS 1379' 기업 호응 높아

치과용 고속 핸드피스 제조업체 두나미스덴탈 관계자가 과학기술나눔운동 스마트스마일에서 제공하는 기술 컨설팅을 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치과용 고속 핸드피스 제조업체 두나미스덴탈 관계자가 과학기술나눔운동 스마트스마일에서 제공하는 기술 컨설팅을 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앞으로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사이언스 오블리주(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무 실현)’가 될 것입니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지난 6월 대전교육청에서 열린 ‘스마트스마일(과학기술 나눔운동) 발대식’에서 한 말이다.

이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되면서 취약계층의 디지털 학습권 보장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며 “디지털 기기 나눔과 수학, 과학 재능기부 활동이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에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업료, 교재비 등을 지원받는 교육급여 가정 소속 초·중·고교생 28만여 명이 스마트스마일 캠페인의 1차 지원 대상이다. 과총은 이 가운데 디지털 기기가 없는 2만5000여 명을 먼저 지원하기로 했다. 과총 관계자는 “7~8월 대전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 100대 기증 신청을 받은 결과 200명에 가까운 학생이 몰렸다”고 말했다.

물품관리법 등에 따르면 공공기관 소유 노트북, PC 등은 내용(耐用) 연수 5~6년이 지나면 감가상각이 100% 이뤄진 것으로 보고 기부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IT)기기 교체 주기로 볼 때 내용 연수가 너무 길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과기정통부는 올 5월 5년 미만 기기도 기부가 가능하도록 ‘국가 연구개발 시설·장비의 관리 등에 관한 표준지침’을 개정하기로 하면서 스마트 스마일 캠페인에 힘을 실었다.

과총은 스마트스마일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국 13개 지역연합회,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함께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6월부터 산기협의 ‘기업공감 원스톱지원센터 SOS 1379’에 코로나19 대응 전담팀을 신설해 기업 지원을 강화했다. 기업이 기술적 애로에 직면할 때 과학기술자들이 전화, 온라인 상담, 현장 방문 등으로 도와준다. 정부 산하 기계, 전기·전자, 화학, 정보통신, 소재, 바이오, 식품, 환경·에너지 등 분야 80여 개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기업들은 스마트스마일에 즉각 호응하고 있다. 기능성 식품인 유색 누룽지 제조 기술을 개발 중인 패시브바이오팜은 공정 중 초음파 추출기를 통한 천연색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초음파 추출 전문가인 이승범 단국대 교수가 현장 자문 등 다섯 번에 걸쳐 이 기업을 도왔다. 부산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가교테크는 한국기계연구원과 노정욱 국민대 교수의 지원을 받아 매연 저감 후처리 장치인 ‘플라즈마 버너’ 관련 원천기술 등을 이전받았다.

치과용 고속 핸드피스 제조업체 두나미스덴탈도 스마트스마일 캠페인의 도움을 받아 독자적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핸드피스는 고속 회전 과정에서 토크값을 고도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기술 컨설팅을 인하대와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 제공하고 있다.

금·은지, 펄지, 홀로그램지 등 특수지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해성특수지는 육안 검사 과정에서 계속 발생하는 불량품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산업기술진흥협회 관계자는 “실무 경험이 많은 과학기술 자문단이 현장을 점검한 결과 고속 작업 과정에서 결함을 찾아낼 인공지능(AI) 딥러닝 기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 지원엔 한국산업기술대가 나섰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