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청와대 제공
사진 청와대 제공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대해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데엔 익숙하지만, 남의 비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2일(현지시간) ‘한국 진보 정권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발산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썼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이전보다 더욱 개방적이고, 다른 의견이 나와도 무시하지 않고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요즘엔 초반에 표방한 가치가 시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이 정권에 비판 의견을 개진한 이들에 대해 각종 법적 조치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청와대는 한 보수신문에 실린 칼럼이 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정 다툼에 나섰다”고 썼다.

청와대는 작년 중앙일보가 게재한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칼럼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대통령 순방 일정을 해외 유람으로 묘사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법원으로 옮겨간 정정보도 소송전에서 청와대가 패소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한 정치학 교수가 문재인 정권이 잇속 차리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칼럼을 쓰자 형사고발했다”고 했다.

이는 올초 경향신문에 더불어민주당 비판 칼럼을 기고했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을 당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임미리 교수 고발을 두고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10여일만에 고발을 취하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 우파 유튜버는 문재인 정부 전직 고위 관료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수감됐는데, 이후 조 전 장관은 불명예를 안았다”고도 썼다. 조 전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보수 유튜버 우종창씨의 사례다. 지난 19일엔 국제언론자유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취재원을 밝히기를 거부해 수감된 한국 언론인의 석방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우씨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입법부에도 문제가 있다”며 “이달 초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언론의 이른바 ‘가짜 뉴스’에 대해 정부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같은 진보 정권의 행보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좌·우파 대결’ 구도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간 한국 좌파는 무자비한 군사 독재 세력에 맞서온 이들이라는 정체성을 쌓아왔다”며 “이때문에 자신들을 약자로 여기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우선 순위로 치지 않았다”고 썼다.

이어 “정권을 잡은 뒤에도 좌파 세력은 스스로 약자라는 이미지를 벗지 않고 있다”며 “여기에다 일부 매체에 대해서 '특정 정치세력의 입'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비판이 일면 곧바로 ‘우리(정부)가 피해자’라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정치인들이 옛 말을 인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는 세종대왕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1425년 세종대왕이 한 말을 인용했다. “나는 고결한 위인도 아니고 통치에도 능숙하지 않다. 하늘의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내 결점을 찾고 내가 비판에 응답하게 하라”라는 말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