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물에 잠긴 곡성 농경지, 재기 방안마저 막막한 상황
"추석에 팔 게 하나도 없네요"…과일은 썩고 벼는 병해충 확산
"물이 일찍 빠졌다면 뭐라도 건졌을 텐데 올해는 추석에 내다 팔 게 하나도 없네요.

"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서 딸기와 멜론을 키우는 농민 이모 씨는 토사와 쓰레기가 밀려 들어온 비닐하우스를 둘러보며 14일 "치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숨 쉬었다.

어디서 떠내려왔는지 모를 쓰레기가 들어차고 진흙탕에서 멜론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비닐하우스 내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폭우가 쏟아진 8일부터 농경지를 덮친 흙탕물이 꼬박 나흘간 머물면서 이씨뿐만 아니라 침수 피해를 본 곡성 농민들의 사정은 저마다 비슷했다.

"추석에 팔 게 하나도 없네요"…과일은 썩고 벼는 병해충 확산
2m 가까이 자랐다가 모조리 땅바닥에 쓰러져버린 옥수수밭, 볏짚을 둥글게 말아 놓은 곤포사일리지가 포탄처럼 박힌 참깨밭 등 폭우는 곳곳에 고약한 발자취를 남기고 떠났다.

블루베리 농사를 망친 고달면의 한 농민은 "뼈대가 틀어져서 철골도 결국엔 철거해야 한다"며 엉망이 된 비닐하우스 내부를 정리하느라 고개를 돌려볼 여유조차 없었다.

곡성군이 파악하기로 지금까지 재배시설 1천691동이 침수 피해를 봤다.

곡성읍과 오곡면, 고달면에서 딸기와 멜론 등 과일을 키우는 대규모 재배 단지에 피해가 집중됐다.

옥과면에서는 유기 인삼 재배지, 입면에서는 파파야농장 등이 물에 잠겼다.

"추석에 팔 게 하나도 없네요"…과일은 썩고 벼는 병해충 확산
폭우는 시설재배농뿐만 아니라 들녘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에게도 큰 피해를 남겼다.

장시간 물에 잠겼던 벼가 시름시름 말라 죽는 잎마름병이 들녘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연일 현장 조사를 벌이는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벼 흰잎마름병과 갈색잎마름병이 나타나고 있는데 세균이 일으킨다"며 "어제와 오늘 햇볕이 쨍쨍하고 맑으면서 그나마 다행으로 급속한 속도로 번지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곡성에서는 이달 폭우로 농경지 620ha가 침수되거나 유실·매몰됐다.

작물이 썩고 병충해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나 주택과 공공시설 복구에 인력과 장비가 우선 배치되다 보니 고령의 농민들이 손을 못 대는 농경지가 대부분이다.

"추석에 팔 게 하나도 없네요"…과일은 썩고 벼는 병해충 확산
농작물 선별장도 침수 피해를 봐 추석 대목을 앞둔 농작물 출하에 차질을 빚게 됐고, 응급 복구를 마치면 다시 심을 모종도 모조리 물에 잠겨 막막한 상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