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모든 시스템을 구축한 한국에선 엄격하고 보수적인데다 남녀 차별이 잔존하는 아랍 국가들의 문학 작품이 낯설고 불편할 수 있어서다.
이슬람 종교가 모든 가치의 상위에 있고 왕정 또는 독재 정권이 대부분 통치해온 아랍 문화권의 특성상 문학이 자유롭게 융성하기 어려웠던 것도 아랍권 문학이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암흑 속에서도 예술을 꽃피우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역사상 가장 교조적이고 엄혹했던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 체제에서도 뛰어난 문학 작품과 작가들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시리아 출신 시인 아도니스와 이란 출신 소설가 파리누쉬 사니이는 이런 억압과 역경을 뚫고 예술혼을 불태우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아랍권 작가들로 꼽힌다.
마침 아도니스의 시집과 사니이의 장편소설이 최근 나란히 출간됐다.
아도니스 시선집 '너의 낯섦은 나의 낯섦'(민음사)과 사니이의 두 번째 소설 '목소리를 삼킨 아이'(북레시피)이다.
'너의 낯섦은 나의 낯섦'은 최근 10여년 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계속 거론돼온 아도니스의 시 세계를 압축해 보여준다.
그가 데뷔 이후 쓴 대표 시들을 엄선해 엮어냈다.
무려 1천500년 동안 아랍 시문학에서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온 전통 정형시 '까시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운율을 구사하며 현대적 감각의 시풍을 구축하려는 아도니스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김능우가 옮겼다.
아도니스는 평생 자유시 창작 운동인 '신시(新詩) 운동'을 펼쳤다.
아랍의 보수적인 문화에 죽음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파격적 시도를 한 것이다.
전통의 정체와 폐단을 시로 비판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테러 위협까지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영미 시문학의 흐름을 바꾼 모더니스트 T.S. 엘리엇에 비견된다.
'아랍의 엘리엇'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무언가 역사의 터널에 펼쳐져 있었다/ 장식되고 지뢰가 부설된 무언가/ 석유에 중독된 자신의 아이를 들어 나르고/ 악독한 상인이 그 아이를 노래한다/ 동은 보채는 아이처럼/ 달라고 소리쳤고/ 서는 아이의 흠결 없는 할아버지였다' (시 '서와 동' 일부) 아도니스는 시리아 서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알리 아흐마드 사이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우연히 정부 장학생에 선발돼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레바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리아에서 사회주의 정치 활동을 하다가 레바논으로 이주했고, 1980년대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자 프랑스 파리로 망명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사니이의 전문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신체적 장애가 없음에도 어린 시절 말을 하지 않았던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면서 가족 소설이자 심리 소설이다.
일곱 살 때까지 '선택적 함구증'(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 증세)을 앓았던 소년 샤허브가 스무 살이 돼 과거를 회상한다.
샤허브와 그의 엄마 목소리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며 가족 안의 혼란과 편견, 슬픔, 관계의 미숙함을 드러낸다.
소설 속에서 샤허브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독자들은 그저 이 아이가 미숙함과 두려움 때문에 세상 밖으로 통하는 창을 닫고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