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포근한 제목과 달리 다소 낯선 느낌의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감독과 배우의 면면 때문이다. 감독인 에르완 르 뒤크는 신예급이고 남우주연 나우엘 페레스 비스카야트는 아르헨티나 배우다. 여우주연 셀레스트 브룬켈은 2002년생이다. 그런데 영화는 뜻밖이다. 그것도 아주. 이유는 영화의 서사를 꽤 시적으로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식이다. 딸 로자(셀레스트 브룬켈 분)의 남자 친구 유제프(모하메드 루리디 분)는 날마다 그녀 집에서 자고 간다. 멀쩡한 계단을 놔두고 그녀의 아빠 에티엔(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분)의 눈을 피해 2층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그러면서도 둘은 육체적 관계를 하지 않는다. 로자는 아빠 에티엔에게 유제프와의 첫 경험 얘기는 꼭 공유하겠다고 말한다. 로자가 유제프와 자지 않는 이유는 아빠가 상심할까 봐여서다. 에티엔과 로자 부녀는 특별하다. 로자는 에티엔을 아빠 이상으로, 삶의 동반자이자 반려자로 사랑한다. 그렇다고 이성으로까지는 아니다.로자는 그림을 잘 그린다. 프랑스 동북부 예술전문대학인 메스에 입학 허가를 받은 참이다. 로자의 그림 실력은 엄마 발레리의 유전자 덕인데, 발레리는 에티엔과 하룻밤 정염으로 로자를 낳은 후 갓난아기일 때 부녀를 버리고 떠났다. 이 가족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아빠 에티엔은 해안 작은 도시의 시청 아마추어 축구단 코치로 살아가며 택시기사인 엘렌(모드 와일러 분)과 사귀는 사이다. 에티엔은 혼자 이를 악물고(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딸아이를 키워냈다. 당연히 너무 힘들고, 너무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가을이었다. 햇살과 함께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거닐 때였다. 자연스럽게 아란훼스협주곡이 떠올랐다. 기타 음악의 산실이나 다름없는 스페인에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가 있다.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디프테리아 후유증으로 3세 무렵 시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10대 중반부터 어렵사리 화성과 작곡을 배우기 시작해 음악가로 성장했다.그가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난 이후. 그때 그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곡이 아란훼스협주곡이다. 3악장으로 이뤄진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실제 기타를 연주하지는 않았던 로드리고는 신고전주의와 민속음악을 결합한 형태의 작곡을 시도했는데, 스페인의 음악 유산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아란훼스는 부르봉 왕가가 머물던 여름 별궁의 이름. 여러 버전으로 변주돼온 아란훼스협주곡 중 5곡을 추천한다.● Ver.1 나르시소 예페스 클래식한 기타 연주#. 스페인 출신 클래식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예페스의 아란훼스협주곡을 먼저 골랐다. 나르시소 예페스는 1952년에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금지된 장난’의 기타 연주를 담당해 영화와 함께 유명해진 연주자다.● Ver.2 마일스 데이비스 플라멩코와의 조화#. 다음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Sketches Of Spain’에 수록된 아란훼스협주곡을 추천한다.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는 아내와 함께 플라멩코 댄서 로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뉴욕의 레코드 가게에서 판매하던 모든 플라멩코 앨범을 구입했다. 1960년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한 이 곡은 지휘자 길 에반스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10년의 세월이 주는 위력을 가늠하게 하는 속담이다. 데카(deca), 즉 10년을 뜻하는 말과 당스(dance), 춤을 의미하는 말이 만난 무용 작품이 있다.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1952~)의 예술적 자취를 하나로 모은 작품이다.10년간 응축한 한 안무가의 위력을 담은 ‘데카당스’는 서울시발레단과 함께 이번 시즌의 문을 힘차게 여는 열쇠가 됐다. 컨템퍼러리발레를 지향하는 공공발레단의 정체성과 방향의 키가 제 항로에 접어들었다는 긍정의 신호를 보여준 공연이었다. 춤으로 부르는 고향의 노래 “셰바스하마임 우바아레츠!”데카당스는 나하린의 안무작 8편 중에서 하나씩 그 조각들을 모아 또 하나의 레퍼토리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 전반부터 강렬하다. 반원형 형태로 배치한 의자에서 검정 재킷과 흰색 셔츠를 입은 무용수들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는 장면은 그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이때 무용수들은 다 같이 “셰바스하마임 우바아레츠(Shebashamaim uva’aretz)”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쏟아내며 노래한다. 히브리어로 ‘하늘과 땅에’라는 뜻이다.이 지점에서 나하린의 고향이 이스라엘이란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인이 유월절에 부르는 노래 ‘에하드 미 요데아(Echad mi yodea)’의 한 부분이다. 에하드 미 요데아는 ‘누가 하나(님)를 아는가?’라는 의미다. 나하린은 어릴 때부터 읽고 부르던 고향의 노래를 자신의 작품 안에 넣었다.발레 공연을 종종 봐온 관객이라면 이번 공연에서 의아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몇 차례 공연한 ‘마이너스 7’과 이 장면이 똑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