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다수결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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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정책서 부동산까지
'민주정부'의 '민주 무시' 논란
"타는 목마름으로"
이런 민주주의 갈구한 건가
"다수결 앞서 토론과 설득" 새겨야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민주정부'의 '민주 무시' 논란
"타는 목마름으로"
이런 민주주의 갈구한 건가
"다수결 앞서 토론과 설득" 새겨야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과 ‘신장개업’을 거듭해온 한국 정당(政黨)사에서 눈에 띄는 게 있다. 보수와 진보의 당 명칭 작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이 한나라·새누리·미래통합 따위 요령부득의 간판을 달아온 데 비해 진보정당은 표방하는 핵심가치를 열심히 담아내왔다. 평화민주·새천년민주·대통합민주·열린우리·민주통합·더불어민주 등으로 숱하게 문패를 바꿨지만 대부분 ‘민주’를 빠뜨리지 않았다.
오랜 전제군주체제와 일제강점, 개발독재를 겪은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비원(悲願)이었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로 시작해 ‘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를 절규한 김지하의 시(詩)는 그랬던 시대의 증언이다. 역대 ‘민주당’들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고, 지금의 여당은 처절하고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의 본산이자 결실을 자처한다.
그런 민주당 정권에서 요즘 불거지고 있는 독주(獨走) 논란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탈(脫)원전에서부터 최근의 부동산법 파동에 이르기까지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과 소란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정부’에서 ‘민주주의 무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덮어지겠거니 하며 지나칠 게 아니다.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 행태가 딱 그렇다. 정부와 여당은 재산권 침해 논란을 빚은 ‘7·10 부동산 대책’ 후속입법을 제대로 된 공론화 없이 밀어붙였다. 국회 규정에는 법안이 발의되면 먼저 소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또 토론하게 돼 있다. 국회 전문위원들의 검토와 해당 분야 전문가 및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수렴도 거치는 게 정상이다. 확정된 법률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선 안 될 절차다. 정부와 여당은 그것을 무시했다. 관련 법안이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본회의를 통과하고, 정부가 국무회의를 열어 공포하기까지 48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여당의 ‘무기’는 국회 의석수(300석)의 절반이 훨씬 넘는 176석이었다. 야당이 뭐라고 하건 다수결로 통과시키면 그만이라는 셈법을 작동했다. 그런 여당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이 49.9%로 제1야당인 통합당(41.5%)을 8%포인트 남짓 앞섰을 뿐이고,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는 33.4%로 통합당(33.8%)보다 오히려 뒤졌다는 사실이다. 자기들의 정책과 법안을 무조건 ‘국민의 뜻’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탈원전’ 정책이 국민적 합의를 본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탈원전을 공약에 포함시킨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으므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안”이라고 말한 데 대해 최재형 감사원장이 “41% 지지를 받은 걸로 아는데 대다수라 할 수 있느냐”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 원장이 공격을 받았다. 여당 의원들은 “대선 불복이나 다름없는 발상”이라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지지율을 따지기 이전에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면 다수의 동의를 받은 것”이라는 논리는 단순함을 넘어 억지 주장이다. 투표자들이 선거에서 누군가에게 표를 줄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당선한 후보의 공약=다수 국민의 지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난하는 건 황당한 자기모순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보다 더 강력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문 대통령보다 7%포인트 이상 높은 48.67%를 득표했다. 그런데도 당선된 뒤 재검토 과정을 거쳐 다듬은 게 4대강 사업이다.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기둥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소수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숙의(熟議)정치는 그래서 필요하다. 부동산법 파동을 겪으며 “민주주의 구성 요소인 다수결 원칙은 토론과 설득을 전제로 한다.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는 등의 여당 내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가 갈구한 민주주의가 지금의 이런 것은 아니었다.
haky@hankyung.com
오랜 전제군주체제와 일제강점, 개발독재를 겪은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비원(悲願)이었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로 시작해 ‘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를 절규한 김지하의 시(詩)는 그랬던 시대의 증언이다. 역대 ‘민주당’들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고, 지금의 여당은 처절하고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의 본산이자 결실을 자처한다.
그런 민주당 정권에서 요즘 불거지고 있는 독주(獨走) 논란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탈(脫)원전에서부터 최근의 부동산법 파동에 이르기까지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과 소란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정부’에서 ‘민주주의 무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덮어지겠거니 하며 지나칠 게 아니다.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 행태가 딱 그렇다. 정부와 여당은 재산권 침해 논란을 빚은 ‘7·10 부동산 대책’ 후속입법을 제대로 된 공론화 없이 밀어붙였다. 국회 규정에는 법안이 발의되면 먼저 소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또 토론하게 돼 있다. 국회 전문위원들의 검토와 해당 분야 전문가 및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수렴도 거치는 게 정상이다. 확정된 법률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선 안 될 절차다. 정부와 여당은 그것을 무시했다. 관련 법안이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본회의를 통과하고, 정부가 국무회의를 열어 공포하기까지 48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여당의 ‘무기’는 국회 의석수(300석)의 절반이 훨씬 넘는 176석이었다. 야당이 뭐라고 하건 다수결로 통과시키면 그만이라는 셈법을 작동했다. 그런 여당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이 49.9%로 제1야당인 통합당(41.5%)을 8%포인트 남짓 앞섰을 뿐이고,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는 33.4%로 통합당(33.8%)보다 오히려 뒤졌다는 사실이다. 자기들의 정책과 법안을 무조건 ‘국민의 뜻’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탈원전’ 정책이 국민적 합의를 본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탈원전을 공약에 포함시킨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으므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안”이라고 말한 데 대해 최재형 감사원장이 “41% 지지를 받은 걸로 아는데 대다수라 할 수 있느냐”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 원장이 공격을 받았다. 여당 의원들은 “대선 불복이나 다름없는 발상”이라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지지율을 따지기 이전에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면 다수의 동의를 받은 것”이라는 논리는 단순함을 넘어 억지 주장이다. 투표자들이 선거에서 누군가에게 표를 줄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당선한 후보의 공약=다수 국민의 지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난하는 건 황당한 자기모순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보다 더 강력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문 대통령보다 7%포인트 이상 높은 48.67%를 득표했다. 그런데도 당선된 뒤 재검토 과정을 거쳐 다듬은 게 4대강 사업이다.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기둥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소수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숙의(熟議)정치는 그래서 필요하다. 부동산법 파동을 겪으며 “민주주의 구성 요소인 다수결 원칙은 토론과 설득을 전제로 한다.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는 등의 여당 내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가 갈구한 민주주의가 지금의 이런 것은 아니었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