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서도 받지 못할 도움 한국에서 받아…돌아가면 척수장애인 위한 일하고파" 한 40대 아프리카인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겠다는 꿈을 품고 모국을 떠나 머나먼 한국 땅을 밟았다.
일순간 불의의 사고를 겪고 혼자서는 손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처지가 됐으나 한국 의료진 등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미래를 찾는 중이다.
2일 국립재활원 등에 따르면 2018년 3월 가나에서 한국에 온 대니얼 드잔(46)씨는 지난해 11월 말 집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겪었다.
이로 인해 척수신경이 끊어져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최중증 척수장애인이 됐다.
대니얼은 "사고가 난 후 처음 눈을 떴을 때 걸어다닐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상태임을 알게 된 뒤 나보다도 부인과 아이들에게 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한 여성의 남편이자 네 아이의 아빠인 그는 가나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보건계열에서 종사하던 엘리트였다.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 모국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한국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글로벌리더쉽 박사 과정을 밟던 그에게 이런 사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수술은 받았으나 한국에 올 때 들었던 유학생 보험으로는 향후 치료비 등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그의 지인이 비정부기구 '엔젤스헤이븐'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국립재활원으로 옮겨 올해 2월부터 치료받기 시작했다.
이후 약 반년이 흐른 지금 대니얼은 전동휠체어에 앉아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립성 저혈압 증세로 자리에 앉기조차 힘겨웠으나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돼 이제는 턱으로 조종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외출도 할 수 있게 됐다.
대니얼은 "가나에서도 받지 못할 도움을 한국에서 받았다"며 "한 분씩 이름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치료를 담당한 국립재활원도 대니얼의 '은인' 중 하나다.
이범석 국립재활원 원장은 처음 대니얼의 소식을 듣고는 치료를 맡겠다며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최중증 척수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이 국내에서 가장 잘 갖춰진 국립재활원에서 치료받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재활원 측은 매달 700만∼800만원 가까이 드는 대니얼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시민단체들과 함께 모금활동을 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진료비 감면 논의를 하고 있다.
이 원장은 "국립재활원의 임무는 장애인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여기서 장애인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장애인을 의미하기에 대니얼을 도운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대니얼의 가족들도 한국인들의 도움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의 부인 재닛(38)은 올 3월 한국에 들어와 남편을 보살피고 있다.
간병인을 고용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대니얼의 심리적 안정도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두 달 가까이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울기만 했다는 재닛은 오히려 한국에 와서 남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재닛은 "처음에는 남편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며 "막상 한국에 와서 의료진분들이 모두 친절하고 헌신적으로 치료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오히려 대니얼에게는 다행이었다.
올 4월 비자가 만료돼 가나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탓에 한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기간이 연장됐다.
이범석 원장은 "4월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가나에 가서 지금처럼 활동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을 것"이라며 "그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돼 이제는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니얼의 삶은 사고 이후 완전히 달라졌지만 미래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함없다.
그는 "가나에 돌아가면 한국에서 받은 도움을 바탕으로 척수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공공교육 등 나 같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