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무대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무대에 오르기 전 악단별로 연주한 작품을 찾아 듣고 모든 악기 스코어(악보)를 훑어봤어요.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한 번도 없죠.”

27일 서울 도렴동 한 카페에서 만난 비올리스트 박경민(31·사진)은 독일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수습 단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인 연주자로선 처음으로 베를린필 정단원에 발탁됐다. 2018년 3월 수습 단원으로 뽑힌 지 1년7개월 만이다.

박경민은 2005년 17세 나이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에 진학했다. 2013년 독일 최고 권위의 ARD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2017년에는 사이먼 래틀이 이끈 베를린필 아시아 투어에 객원 단원으로 참여했다.

그래도 수습 단원이 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단원들은 베를린필과 종신 계약을 맺다 보니 빈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 베를린필이 비올리스트 수습 단원을 선발할 당시 박경민은 스웨덴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RSP)에서 수석을 맡고 있었다. “돌아보면 위험한 선택이었어요. 지원서를 내려면 RSP 수석에서 물러나야 했거든요. 하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온 베를린필에 꼭 한 번 지원하고 싶었습니다.”

베를린필 단원이 되려면 우선 전체 단원 앞에서 오디션을 치러야 한다. 선발된 뒤 수습으로 2년 동안 활동한다. 이때 자신이 속한 파트 선배들에게 정단원 추천을 받지 못하면 자동 탈락이다. 이후 단원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받아야 비로소 정단원이 된다. “오디션에서 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오니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었죠. 사회생활은 수습단원 때 거의 다 배운 것 같아요. 하하.”

막내였지만 무대 욕심은 누구보다 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연주회가 취소되자 온라인 공연에 나섰다. 베를린필의 온라인 플랫폼인 ‘디지털 콘서트홀’에서 부활절 음악축제를 열자 바이올리니스트 도리안 쏙씨와 듀오를 결성해 무대에 올랐다.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이 보는 공연이다 보니 부담이 컸어요.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염려했죠. 저는 그런 걱정보다는 무대에 설 수 있기만을 바랐죠.”

이런 열정 덕분일까. 베를린필 현악단 선배들은 지난해 ‘필하모닉 콰르텟(4중주단)’을 결성할 때 수습단원 신분이었던 박경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올라는 악기 특성상 다양한 작품을 독주로 풀어내기 어려워요. 오케스트라나 콰르텟 활동을 하면서 작품을 해석하는 시야도 넓어졌어요. 또 다른 성장의 계기가 됐습니다.”

박경민은 베를린필에서 쌓은 ‘내공’을 28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풀어낸다.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함께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와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 2번’ 등을 들려준다.

글=오현우/사진=강은구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