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재단이 연구개발비를 지원한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내년 6월부터 연간 2억 개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게이츠 이사장이 백신 개발 시기를 처음 언급함에 따라 국내 업체의 백신 개발 기대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게이츠 이사장이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와 한국이 코로나19 치료와 백신의 공평하고 공정한 보급을 위한 세계적 연대를 지지한 것에 경의를 표했다”며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서한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감명받았다”며 백신 개발에서도 앞서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그는 “한국은 훌륭한 방역과 함께 백신 개발에서도 선두에 서 있다”고 평가하며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개발 상황을 전했다.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은 지난 5월 SK바이오사이언스에 개발비 44억원을 지원했다. 개발비 지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세계 주요 업체의 백신 개발 능력을 면밀히 살펴온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이 지원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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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 "한국, 백신 개발 선두…K바이오에 투자 두 배 확대"

빌 게이츠 빌&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 이사장은 26일 “한국에서 개발한 백신을 통해 한국 국민과 세계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함께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게이츠재단의 협력을 강화하고 코로나19 등 여타 보건 대응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자체 개발, 게이츠재단 지원, 정부 지원 백신 과제 등 세 가지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자체 개발하는 백신과 게이츠재단에서 지원하는 백신은 모두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비슷한 항원을 합성해 몸속에 넣는 방식이다.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활용한 벡터 백신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웨덴의 글로벌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계약(CMO)도 체결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하는 백신은 임상시험 단계인 세계 제약사들의 백신 24개 중 미국 모더나, 중국 시노팜과 함께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르다.

게이츠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5개 국내 제약바이오업체와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재단 ‘라이트펀드’의 출자 규모를 지금보다 두 배가량 늘리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2018년부터 5년간 500억원 규모로 조성되는 라이트펀드에 게이츠 이사장은 당초 125억원가량을 출자할 예정이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라이트펀드의 출자 규모 확대 의사를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게이츠 이사장이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월에는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코로나19 공조 대응과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국내 코로나19 백신 확보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백신 개발을 돕고 해외 백신을 확보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 제넥신은 지난달 DNA 백신 임상에 들어갔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진원생명과학은 올해 안에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중대본은 세계 백신 공급 협력체인 코백스(COVAX)를 통해 국내 백신 투여 물량도 확보할 계획이다. 코백스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주도하는 백신 공급 협력체다. 한국 등 77개 나라가 참여의향서를 냈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지원한 비용으로 다국적 제약사들과 백신 공급 계약을 맺은 뒤 개발되면 해당 국가의 인구 20% 정도가 맞을 수 있는 백신을 지급한다.

김형호/이지현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