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 한류의 역사 = 강준만 지음.
'대중문화 공화국'이라는 토양 위에서 피어난 한류의 역사를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70여년에 걸쳐 기록하고 탐구한다.

대중문화 공화국이란 냉소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자는 뜻에서 제안한 용어다.

저자는 세계 인구의 0.7%를 차지하는 한국이 이뤄냈다고 해서 '0.7%의 반란'이라고도 불리는 한류 열풍은 대중문화 공화국의 역량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도, 민주주의를 박탈당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도, 엔터테인먼트 문화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으며 내내 번성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이야말로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라고 부를 만하다.

저자는 한류가 어느 시점의 어느 사건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으로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을 둔다고 설명한다.

비교적 실체 있는 근원으로서 해방 이후만을 보더라도 미군의 주둔, AFKN-TV 개국 등에 영향을 받은 미국 대중문화 유입, 최초의 한류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김 시스터스,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유행,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상징되는 1970년대 청년 문화 등의 흐름이 바탕이 됐다.

이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영화, 대중가요 등의 큰 흐름과 주요 사건을 훑어본 저자는 해방 이후 전쟁과 같은 삶, 역동성 넘치는 사회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조건 중 하나가 대중문화였다고 풀이한다.

한류 열풍이 드리운 어두운 그늘도 살펴본다, '프로듀스 101'의 투표 조작 정황으로 드러난 산업 내 굳어진 부조리, 방송·영화계의 착취 구조, 대중문화계 일각의 성 상납, 인권 침해와 같은 문제들이다.

이처럼 한류가 자랑스러운 요소들로만 이뤄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 저자는 "한국인들이 한류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류가 자국 이기주의적 욕망의 충족을 넘어 국가 간 쌍방향 교류와 소통에 기여할 수 있고 이런 '역지사지'를 내부적으로도 적용해 승자 독식형 인력 착취를 개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인물과사상사. 732쪽. 3만3천원.
[신간] 한류의 역사·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 박건호 지음.
대학교 국사학과 1학년 때 답사를 하러 가서 우연히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주운 것을 계기로 30여년간 역사 자료를 모으며 컬렉터로 살아온 저자가 수집품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한다.

사진 한 장에서부터 일기장, 편지, 영수증, 사인, 사직서, 온갖 증명서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의 삶과 일상이 담긴 물건을 모으고 또 모았다고 한다.

그동안 모은 수집품의 양을 자신도 정확히 모를 정도다.

책에서는 이처럼 방대한 수집품 가운데 시대상이 생생히 드러나고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14가지 물품을 소개한다.

독립협회 보조금 영수증에 쓰인 날짜를 통해 독립문이 건립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독립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 극단적인 마음을 품고 한강 다리를 몇번이나 오갔다는 내용의 눈물 젖은 엽서에서 식민지 시기 청년이 겪은 생활고와 취업난을 떠올린다.

또 일장기를 재활용해 만든 태극기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독립의 환희를 느끼고, 한 고등학교 육상대회 우승 기념사진 한 장에서 전쟁도 지우지 못한 민중의 삶을 되살려낸다.

학부에서 역사를, 대학원에서 기록학을 공부하고 역사 교사로 활동해온 이력을 살려 단순히 수집품의 형상과 수집 경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물품을 남긴 사람과 시대적 배경까지 꼼꼼히 살폈다.

휴머니스트. 292쪽 1만8천원.
[신간] 한류의 역사·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 최경열 지음.
동양고전학자가 궁형을 당한 인간 사마천과 기록자 사마천 사이에 흐르는 분노와 갈등 그리고 마음의 뒤엉킴에 주목하며 '문학으로서의 사기(史記) 읽기'를 시도한다.

저자는 사마천이 분노로 자신을 오염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던 그의 기록자로서의 윤리를 언급하며, 문학이라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과 기록성이라는 이성적 기술 방식이 맞물리는 곳, 이것이 사기의 문학성을 형성하고 지탱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기의 '항우본기', '회음후열전', '백이열전', '자객열전' 등 문장과 단락 구성을 세세히 살펴 가며 후대 사서의 전범이 된 사기가 후대의 사서와 갈라져 문학으로 나아간 지점들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한신이 젊은 시절 악동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장면을 묘사한 '이에 한신은 한참 쳐다보더니 몸을 굽혀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다'는 문장에서 '한참 쳐다보다(熟視)'라는 말에 주목한다.

저자는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는 굴욕적인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전에 한참동안 쳐다보며 화를 가라앉혔다는 반응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사기가 문학에서도 모범이 되는 이유 중 하나로 모순적인 존재인 인간을 관념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 모순 속에서 갈등하며 타인과 관계 맺고 비극으로 나아가는 모습까지 폭넓게 인간을 다룬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북드라망. 464쪽. 2만3천원.
[신간] 한류의 역사·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