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웰 차관보, 국영기업 앞세운 중국 비난…당국자·기업 제재에 "여지있어"…
전문가 "미, 거친 대응 길 열어…미중 충돌 우려 고조"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4일(현지시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과 관련해 중국 당국자와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미, 남중국해 고리로 대중 제재 엄포…"현대판 동인도회사" 비판(종합)
스틸웰 차관보는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남중국해 관련 콘퍼런스에서 중국 제재 가능성 질문에 "어느 것도 (논의) 테이블 밖에 있지 않다"며 "이(제재)를 위한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것은 중국이 이해하는 표현"이라며 '분명하고 실재하는 조치'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남중국해 일대에서 중국 국영기업의 굴착이나 측량선, 어선의 활동을 맹비난하면서, 석유회사인 중국해양석유(CNOOC)와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를 위협하기 위한 '공성퇴'(battering ram·적의 성문을 부수기 위해 고안된 공격용 무기)로 기능한다고 비판했다.

또 민간기업과 국가권력의 도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며 "이들 국영기업은 현대판 '동인도회사'와 등가물"이라고 비유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영국이 19세기 중반 인도를 공식적으로 지배하기 전 단계에서 차나 면화, 향신료 등의 무역을 가장해 인도 대륙의 대부분을 장악한 회사다.

중국이 남중국해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국영기업을 앞세웠다는 말로 해석된다.

스틸웰 차관보는 중국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오랫동안 협상해온 '남중국해 행동수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이 수칙은 내년 타결 목표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연기됐다.

스틸웰 차관보는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목표는 그대로 남아 있다"며 "베이징의 군사화 또는 불법적 해상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든 합법화할 행동수칙은 많은 나라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남중국해 고리로 대중 제재 엄포…"현대판 동인도회사" 비판(종합)
이 발언은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성명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완전한 불법이라고 밝힌 것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해변을 따라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그어 90%를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인공섬을 건설한 뒤 군사 기지화해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 등 인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은 인접국의 주장에 힘을 실은 것이자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책임,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중국 신장 지역의 인권문제 등을 둘러싼 충돌 속에 중국과 갈등 요소를 추가한 것이기도 하다.

스틸웰 차관보도 미국의 입장은 "더이상 이 해상 문제에 관해 중립적으로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과 필리핀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카버러 암초'에 대해 "중국이 물리적으로 점령하거나 군사화하려는 어떤 행동도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물론 다른 지역과 관계에서 심각한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에 대해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왜곡하고 있다"면서 "음모를 꾸미고 선동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해상에서의 충돌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미중이 무역에서부터 코로나19, 홍콩까지 모든 것을 놓고 다투고 있지만 남중국해는 양국의 전함이나 전투기가 실제로 충돌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정융녠 싱가포르대 동아시아연구소 국장은 "미중은 이 문제를 놓고 공개적 충돌이나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는 현장에 있다"며 "최고 지도자간 효과적인 소통이 없다면 상황을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기 쉽다"고 우려했다.

CSIS의 남중국해 전문가인 그레그 폴링은 현재 미국의 입장은 제재와 같은 것을 통해 더 거칠게 중국에 대응할 길을 열었고, 남중국해에서 더 많은 해군 작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