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길리어드)의 의약품 렘데시비르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부 승인했다. 이에 따라 유로존 각국에서 렘데시비르 수요가 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사이에서 렘데시비르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EU 행정부격인 EU집행위원회는 렘데시비르에 대해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조건부 판매를 승인했다. 조건부 판매 승인은 공중보건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부작용 등 아직 필요한 정보가 모두 확인되지는 않은 의약품을 27개 회원국에서 1년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의약품이 코로나19 치료제로 EU 차원에서 조건부 판매 승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다.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가 세계 10개국 73개 의료기관과 함께 시행한 임상시험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의 회복 기간을 15일에서 11일로 위약군 대비 약 31% 단축하는 효과를 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1일 코로나19 중증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렘데시비르의 긴급 사용을 승인했다. 지난달 25일엔 유럽의약품청(EMA)이 산소 공급이 필요한 폐렴 증세를 보이는 성인과 12세 이상 청소년의 코로나19 치료에 조건부로 렘데시비르 사용을 승인하도록 EU 당국에 권고했다.

렘데시비르는 현재까지는 미국과 유럽 당국이 긴급 승인한 유일한 코로나19 치료제다. 이에 따라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램데시비르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이미 거의 석달치 생산량을 싹쓸이했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길리어드와 총 50만병 규모 램데시비르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길리어드의 이달 생산량 전부와 8~9월 총생산분의 90%를 모두 합친 규모다.

EU도 물량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EU집행위원회는 미국 보건부가 렘데시비르 공급 계약을 발표한 당일 “EU도 길리어드와 렘데시비르 구입 협상을 하고 있다”며 “EU회원국간 렘데시비를 비축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BBC는 “일단 영국과 독일 정부는 렘데시비르 보유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미국 정부가 약 3개월치를 선점하면서 다른 국가에 돌아갈 물량은 그만큼 부족해졌다”고 지적했다.

길리어드는 지난 5월 미국 외 생산을 위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미국이 사실상 물량을 독점하고 나서자 다른 국가들이 불안해하는 까닭이다.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미국의 대규모 구입건에 대해) 정확한 파악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세계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겪는 만큼 모든 이들이 필요한 약품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 1일부터 램데시비르를 코로나19 치료제 용도로 특례 수입해 공급하고 있다. 폐렴이 있으면서 산소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를 우선으로 최대 10일 투약한다. 이달엔 질병관리본부가 길리어드로부터 일정 물량을 기증받고, 8월부터는 일부 물량을 구입하는 내용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일 램데시비르를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국가필수의약품은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나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으로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을 대상으로 보건복지부장관과 식약처장 등이 협의해 지정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