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원 성비위 징계 중 예체능이 최다…"폐쇄적·도제식 교육방식이 원인"
성추행에 갑질 당해도 교수 '라인'은 생명줄…멍드는 예술학도들
"나 말고 어떤 사람을 잘 알든지. 누군가 이렇게 끌어줄 사람 있어? 대개는 추천서 쓰고 이런 거 전부 요식행위고 전부 전화나 뭐 이런 거로 이루어져. 서류도 내고 공채도 하고 이러는 거 같지만 거의 모든 거는 다 내정이 돼 있어. 사람들끼리 전화하고 이메일하고, 그 사람을 뽑기 위해 괜히 공채를 내고 딴 사람들은 들러리 서는 거야."
서울대 음대 B교수와 학생이 지난해 8월 나눈 대화의 녹취록 중 한 대목이다.

B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를 상대로 성추행과 갑질을 했다는 의혹으로 교내 인권센터 조사를 받았다.

학교 측은 그를 직위해제하고 징계위원회를 통해 징계 여부와 수위 등을 논의 중이다.

이런 대학 예술계열 내 성 비위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2019년 7월 전국 4년제 대학의 교원 성 비위사건 징계 123건 가운데 예체능 계열 교수들의 비위가 22건(17.9%)으로 가장 많았다.

학생들은 교수-학생 간 1대 1로 이루어지는 예술계열의 폐쇄적·도제식 교육 방식이 성 비위와 갑질 등 학생을 상대로 한 '권력형 폭력'을 일상화하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성추행에 갑질 당해도 교수 '라인'은 생명줄…멍드는 예술학도들
◇ "인생 절반 이상을 특정 교수 보고 가는 구조…말도 안되는 일 당연시"
음대 학생 A씨는 5일 "교수의 '라인'은 대학 입학 후가 아니라 이르면 초등학교 2∼3학년 때 이미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교수의 제자가 되고 싶으면 그 교수의 제자들에게 레슨을 받으면서 그 교수의 음악색을 닮아간다"며 "예술계 학생들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특정 교수라는 큰 줄기를 보고 가기에 소위 '라인'을 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모든 과목이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 중심인 음대 특성상 '권위자'의 추천이 후학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A씨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는 B교수의 발언은 과장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B교수 파면 촉구 운동을 벌이는 'B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B특위)도 최근 B교수와 관련한 증언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예술계의 독특한 연줄 문화를 목격했다.

한 증언자는 "B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받을 때 (교수가) 개인 오피스텔로 불러서 속옷 끈을 만지려 했다"고 하면서도 "중·고등학생 때 레슨받으면서 강사가 신체 부위를 만지는 일이 자주 있어 일상적으로 인식하다 보니 속옷 끈을 만지는 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B특위에서 활동하는 이우창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고등교육 전문위원은 "초중고부터 같은 길을 걸어오다 보니 예술계 고유의 기준이 있고, 그 세계 밖에서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졸업 후에도 '라인'이 이어지고, 먹고 사는 문제와 분리되지 않다 보니 이런 행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증언하고 싶지 않아 하거나 이름 남는 것을 피하려 한다"고 전했다.

교수의 성 비위 외에도 일상에 녹아든 '권력형 폭력'은 많다고 예술계 학생들은 지적한다.

전국 34개 예술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2019년 발간한 '예술대학의 성폭력·위계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수의 부조리' 사례로 ▲ 교수 티켓 강매 ▲ 선물 종용 ▲ 장학금 수거 ▲ 열정페이/권위페이(학교 및 교수 개인행사 무보수 강제동원) ▲ 인권침해 ▲ 성차별 등을 들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미투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났을 때 가장 대책 마련이 어려웠던 곳이 예체능계"라며 "현재는 학교 내에서 징계가 일어나도 예체능계 내 권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업계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는 일이 주어지지 않도록 하는 등 관행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