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방체계·군사 및 무기 개편·재원 조달 방안 등 담아
잊힌 실학자 이덕리가 쓴 조선 국방 전략서 '상두지'
18세기 후반 당쟁에 골몰한 조정과 안일에 빠진 벼슬아치들을 대신해 언제 닥쳐올지 모를 전란을 대비한 실학자가 있었다.

이름은 이덕리(李德履·1725∼1797). 그는 1793년 유배지 진도의 한 민가 골방에서 조선의 국방체계와 안보 기반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상두지'(桑土志)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저작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유배된 죄인의 처지였던 이덕리가 저작에 신분과 이름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탓이었다.

이덕리에게는 이덕사(1721∼1776)란 형이 있었는데 정조 즉위 직후 사도세자 추존 상소를 올렸다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 일로 집안이 풍비박산하고, 이덕리는 진도로 유배돼 19년을 지냈고, 이후 영암에서 2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덕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다.

'상두지'에는 '올빼미가 지혜로워 큰비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새는 곳을 미리 막는다'는 유비무환의 뜻이 담겨 있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등이 펴낸 '상두지'(휴머니스트)에는 차(茶) 무역을 통한 군비 재원 마련부터 둔전 조성, 병력 수급, 방어 시설 건설, 군사 전략·전술, 무기 제조법과 사용법까지 다채로운 제도와 방책이 짜임새 있게 정리돼 있다.

이덕리는 당시 무기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군사 전략의 한계를 비판하고, 조선의 안보 현실에 맞춘 새로운 국방 정책의 틀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군사 요충지에 지을 성(城)은 어떠해야 하고, 성을 지키기 위해 병사들을 어떤 전술로 다뤄야 하며, 각각의 전술에 맞는 무기는 어떻게 만들고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국방 구상안 실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국제적인 차 무역을 제안한 부분은 특히 돋보인다.

이덕리는 국방 개혁의 시작점으로 군량미 충당용 토지인 둔전(屯田)을 꼽았다.

그리고 당시 부가가치가 높은 차를 둔전에서 재배해 생산량을 늘려가면 무역을 통해 큰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듯 유배된 실학자의 국방 관련 구상과 제안은 참신하고 치밀했지만, 그의 저서는 조선 사회에서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민 교수는 "무기 체계가 변화한 상황에서 전통 국방 체계와 무기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국방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두지'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민 강진선 민선홍 손균익 리페이쉬안 최한영 옮김. 264쪽. 1만8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