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포착] "화해와 평화 초석되길"…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누렁소 한 마리와 베이지색 코트에 회색 중절모를 쓴 노인에게 쏠려 있다.

소의 목에는 화환이 둘려 있고, 노인은 한 손으로 고삐를 쥐고, 다른 한 손은 누군가를 향해 흔들고 있다.

사진은 1998년 6월 16일 아침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부근에서 열린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환영 행사 모습을 담고 있다.

정 회장은 이곳에서 가슴이 벅찬 듯 말문을 열지 못했고, 환영인파에 손을 흔들어 인사만 했다.

정 회장을 비롯한 방북단은 오전 8시 15분 환영행사장을 출발했다.

정 회장이 탄 승용차를 선두로 소 500마리와 사료를 실은 트럭 50대가 전날 새로 개통한 통일대교를 차례로 건넜고, 9시쯤 판문점에 도착했다.

대성동마을, 유엔사 캠프 등을 지날 때는 주민과 군인, 미군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기도 했다.

소 8마리를 태운 1호 트럭이 군사분계선에 도착하자 북측 인수 요원들은 차를 잠시 세우고 소의 숫자와 상태 등을 점검한 후 바로 통과시켰고, 나머지 트럭도 15분 만에 북측으로 넘어갔다.

이어 오전 10시 정각 정 회장은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고향 땅을 밟게 돼서 반갑다"면서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정 회장의 소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어린 시절 가난이 싫어 아버지가 소 판 돈을 들고 상경한 이후 막일꾼에서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공하기까지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아 인생길을 걸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이날 오전 9시께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그 한 마리의 소가 천 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 27일에 소 501마리를 끌고 다시 북한을 찾았다.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보낸 소를 총 1천1마리로 정한 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와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정 회장은 2차 소떼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담판 지었고, 그다음 달 18일 이산가족 등 관광객을 실은 금강호를 출항시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