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친분 과시했으나 정작 미국은 여행 제한으로 '선긋기'
현지 언론 "굴욕적" 비판…일일 신규 사망자 미 앞서며 코로나19 확산일로

'브라질의 트럼프'를 자처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미국의 브라질발 여행 제한 조치로 더 큰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하며 이를 근거로 자신이 브라질의 국정 책임자로 적합하다는 논리를 펼쳤던 그가 미국의 갑작스러운 입국 제한 조치로 하루아침에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됐다는 설명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친분 과시로 현 정권 지지자들은 종종 지지 행사에 미 성조기를 들고나와 흔드는가 하면 대통령 본인도 최근 '트럼프 2020'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등장한 적이 있다.

'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미국의 여행 제한에 '망신'
이미 현지 언론은 이를 계기로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들어간 모양새다.

현지 매체인 에스타도 데 미나스는 1면에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이 성조기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미국은 (우리에게)'너희 집에 있어라'라고 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정적들은 미국의 이번 조치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굴종이 잘못됐다는 증거라며 이를 '굴욕적인 모욕'이라고 평했다.

한 야당 의원은 트위터에 "대통령이 그리 알랑거린 미국도 브라질 국민의 입국을 금지했다"며 "브라질은 보우소나루 덕에 세계 건강의 위험요소가 됐다"고 꼬집었다.

'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미국의 여행 제한에 '망신'
미국의 이번 조치는 안 그래도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로 거센 비난을 받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전망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를 "가벼운 감기 수준"이라며 무시해 대응 준비를 할 시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자신이 '정치적 우상'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사용하도록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잇따라 사임해 논란을 빚었다.

존스홉킨스대 통계에 따르면 현재 브라질 코로나19 확진자는 37만4천898명으로 미국(166만2천250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사망자는 2만2천666명에 이른다.

게다가 확산세가 다소 진정된 미국과 달리 브라질에선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이날 신규 사망자 수가 807명을 기록, 미국(620명)을 앞질렀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이 와중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최근 친정부 집회에서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국내 사망자가 1만명을 넘던 날 브라질리아의 파라노아 호수에서 제트스키를 즐기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대책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평소의 친 트럼프 성향에다 코로나19에 대한 접근법이나 사태 이후에 보인 행동마저 트럼프 대통령을 꼭 닮아 '브라질의 트럼프' 또는 '열대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었다.

'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미국의 여행 제한에 '망신'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보우소나루 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해 '기다릴 만큼 기다리다' 여행 제한 조처를 내렸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의 남미 전문 계간지 '아메리카스 쿼터리'의 브라이언 윈터 편집장은 "미국도 이 조치가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브라질에 망신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이를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입국 제한 결정은 "사망자가 2만명을 넘고, 확산세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정도 입국 제한을 막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윈터 편집장은 덧붙였다.

그는 또 "코로나19 접근법에 있어서 가장 미국을 닮은 국가를 (입국) 금지했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