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경찰서장에 폭탄 던진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 창립
일제강점기 부산 의열단 단원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가 25일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설립준비위원회는 이날 오후 부산 부산진구 한 중식당에서 창립총회를 한다고 밝혔다.

박 의사는 직계 유족이 없고 독자적인 기념사업회도 없어 박 의사 여동생의 손녀인 김경은 씨가 유족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뜻있는 단체와 행정기관 도움을 받아 정기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생가터 표지판 설치를 추진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설립준비위원회 측은 박 의사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업고등학교) 동창회가 흉상 건립 등 동문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으나 미흡해 기념사업회를 창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설립준비위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몸 바쳐 항일하신 박재혁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의 뜻을 받들고, 그 얼을 기려 민족자존과 정기를 올곧게 세워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 동상 이전과 공원 조성, 훈격 상향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제 경찰서장에 폭탄 던진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 창립
박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나 부산상업학교(부산상고, 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부터 강렬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항일 운동에 참여한 박 의사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부산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9월 14일 하시모토 슈헤이 부산경찰서 서장을 만난 자리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박 의사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혹독한 고문 등에 시달리다가 폐병에 걸렸고 "왜놈 손에 죽기 싫어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며 사형 집행 전 긴 단식 끝에 1921년 5월 11일 숨졌다.

정부는 고인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