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다페 공연리뷰…해외에서 주목한 한국 무용가들
가장 뜨거운 현대무용의 현주소…김경신·김보라·신창호
막이 오르면 30여개의 상자가 무대를 장식한다.

곧 무용수들이 등장해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연장과 돌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던 무용수들은 컨베이어벨트가 등장하면서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지난 21일 제39회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MODAFE)에서 선보인 안무가 김경신의 '호모 파베르-애프터 맨카이드'(Homo-Faber-After Mankind)의 일부다.

영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김경신은 지난해부터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호모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호모 파베르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무대 위 무용수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 빠름은 경쾌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오로지 생존과 분투가 느껴지는 빠름이다.

효과음으로 들리는 "우리는 더 빨리 만들어야 해"라는 말은 이 무용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컨베이어 벨트를 구현한 무대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와 같은 코믹 하면서도 슬픈 느낌은 없다.

그저 기계 같은 건조함과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만이 느껴질 뿐이다
무용 중간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 중 '눈물의 날'이 주제음악처럼 나온다.

인간성은 죽어가고, 우리는 대량생산을 위해 분투하며 살아갈 뿐이다.

조명과 도구, 음악의 사용이 깔끔하고, 주제로 향하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전개가 지나치게 명료한 점은 예술로서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뜨거운 현대무용의 현주소…김경신·김보라·신창호
이어진 김보라의 '더 송'(The Song)은 김경신의 작품과는 대척점에 있다.

주제는 모호해지고, 움직임의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김보라는 최근 수년간 해외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선보인 젊은 안무가다.

원래 블루댄스씨어터의 대표 레퍼토리인데, 김보라가 객원 안무가로 나서서 원작을 전면 수정했다.

원작이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그린 무용극이었다면 김보라의 개작은 스토리, 텍스트, 노래를 일체 배제했다.

김보라의 설명대로라면 '노래와 움직임의 원형'에 집중했다고 한다.

음악의 본질적인 측면을 움직임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춤은 점, 선, 면의 세상, 즉 추상의 세계로 나간다.

무용수들은 마치 새들이 인간으로 환생하면 추었을 것 같은, 기괴한 움직임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춤의 이미지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선하고, 눈길을 끄는 무용이지만 무용수들의 숙련도는 조금 아쉽다.

현대 무용계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신창호는 '노 코멘트'(No Comment)를 들고 모다페를 찾았다.

세 작품 중 에너지적인 측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2002년에 초연된 작품이지만 모다페에서는 첫선을 보인다.

2012년 유럽 직업발레단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수출됐다.

남성 무용수들은 천천히 몸을 풀면서 무대의 온도를 서서히 끌어올린다.

무대는 무용수들이 정장에서 셔츠, 맨몸(상의만 탈의)으로 한 커풀씩 옷을 벗을 때마다 점점 뜨거워진다.

원시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음악으로 치면 타악의 힘이 강한 작품이다.

만들어진 지 18년이 지났지만, 유통기간은 지나지 않은 듯하다.

김경신, 김보라, 신창호의 작품은 해외에서 주목한 한국의 자랑스러운 안무가를 조명하는 '센터 스테이지 오브 코리아'(Center Stage of Korea) 섹션을 통해 상연됐다.

가장 뜨거운 현대무용의 현주소…김경신·김보라·신창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