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방역으로의 복귀가 시작되며 공연가도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반갑다. 소리 없이 관극하기 등 감염 확산을 방지하려는 환경 조성 노력이 체온 측정, 연락처 남기고 마스크 쓰기, 손 소독제 활용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오래 기다린 만큼 반가움이 더 크다. 뮤지컬 ‘렌트’가 그렇다.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뮤지컬로 각색한 것으로, 19세기 파리 몽마르트르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현대 뉴욕으로 배경을 옮긴 문제작이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의 삶은 고단하다. 그 시절 ‘라 보엠’의 가난한 청춘을 괴롭힌 것이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결핵이었다면, ‘렌트’에는 사악한 대도시의 물질만능주의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HIV 바이러스와 에이즈가 도사리고 있다. 뮤지컬치고는 꽤 진지하고 심각한 그리고 직설적인 소재와 내용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경우다.

뮤지컬 ‘렌트’가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건 2000년의 일이다. 아직 대한민국에 뮤지컬 붐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이전에 등장해 관객들의 눈길을 집중시켰다. 남경주, 최정원, 이건명 등 간판급 스타들의 열정도 좋았지만, 1년을 분(分)으로 환산한 ‘시즌스 오브 러브’의 51만5600분의 시간들이라는 노랫말은 당시 신인이었던 뮤지컬 배우 박준면의 소울풀한 가창력으로 멋지게 포장돼 심금을 울렸다. 스트리트 퍼포머인 모린 역의 황현정도 인상적이었지만, 길거리 음악가 엔젤 역의 김호영은 세간에 화제가 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 ‘렌트’는 극본과 작사, 작곡의 1인 3역을 맡았던 조너선 라슨을 빼놓고 말하기 힘들다. 가난한 프리랜서 예술가였던 라슨은 뮤지컬이 막을 올리기 하루 전날, 서른다섯의 나이에 급성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렌트’의 주제는 ‘오직 오늘밖에 없다(No day but today)’는 문구로 빈곤하고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페라와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인 미미가 되살아나는 것도 이런 주제 때문에 시도된 변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라슨의 삶이 이 메시지의 실증적 사례가 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라슨은 작품을 통해 예견된 삶을 살다가 홀연히 떠난 전설적인 인물로 남았다. 1996년 토니상 수상식에서 극본상과 작곡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대리수상에 나선 ‘렌트’ 관계자가 눈물로 그를 추모하던 모습은 꽤나 오랜 잔상을 남긴 아쉬움과 감동의 순간이었다.

오는 6월 막을 올릴 새로운 ‘렌트’ 공연에는 스타급 배우가 대거 동참한다. 외로운 로커 로저 역으로 오종혁과 장지후가, 인디 영화감독 지망생인 마크 역으로 정원영과 배두훈이 나온다. 미미 역의 아이비, 콜린 역의 최재림도 기대되지만 무엇보다도 엔젤 역으로 데뷔했던 김호영이 이번 무대에선 최고참으로 같은 역할을 맡아 이목을 집중시킨다. 무대가 목말랐던 실력파 배우들의 ‘한풀이’가 무대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준다.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렌트’가 전해주는 불멸의 메시지다. 결핵도, 에이즈도,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젊은 아티스트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꺾을 수 없다는 결연한 명제다. 무대가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다. 다시 만나는 ‘렌트’가 진정 반가운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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