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세균 감염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이렇다 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이런 상황은 전쟁터에서 특히 심각했다.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상처 감염으로 죽은 병사들은 적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병사들보다 많았다.
그때의 세균의 역할을 지금 이 시대에 바이러스가 맡고 있다고 할까? 의료 역사서 '감염의 전장에서'를 쓴 미국의 토머스 헤이거는 "우리 부모 세대는 연쇄구균 인두염, 베인 상처 감염, 성홍열, 수막염, 폐렴 등 수많은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나와 학교 친구들이 살아남은 것은 항생제 덕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의 주인공인 게르하르트 도마크(1895~1964)는 의대에 다니다가 독일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병을 치료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쟁 동안 수많은 부상병과 수술 장면을 목격한 도마크는 심술궂고 비겁하게 인간을 살해하는 이 지독한 천적의 파멸적 광기에 맞서겠노라고 결연히 다짐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 도마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3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책은 단순히 도마크의 행적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세균 감염이 당시 과학자와 의학자들에게 어떤 위협이었는지, 독일·영국·미국·프랑스 등의 거대 제약회사가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차근차근 들려준다.
연쇄구균이 일으키는 다양한 세균 감염에서 설파제는 놀라운 효능을 발휘했다.
기적의 약물인 설파제가 보급되면서 산욕열로 인한 산모 사망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이전까지 산욕열은 출산 산모들의 치명적 위협이었는데, 피해가 심한 해에는 산모 네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설파제는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의사와 병원의 역할도 바꿔놨다.
1930년대만 해도 대다수 의료 행위가 환자의 집에서 행해졌으나, 항생제 덕분에 병원이 한결 안전한 곳이 돼 종전의 왕진 제도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제 분만의 대부분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의사의 위상도 전에 없이 높아졌다.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세균의 위협을 설파제의 발명·보급으로 극복했듯이 현재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도 새로운 항생제 발명을 통해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기적이 조만간 우리 앞에서 펼쳐질 것이다.
세상사는 결국 산 넘어 산, 즉 도전과 극복의 연속적 드라마가 아니던가.
이와 관련해 저자의 다음 언급은 향후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설파제는 항생제 시대를 열었으며, 우리가 아는 현대 의학의 토대를 놓았다.
1930년대 중엽에 세계무대에 등장해 엄청난 흥분을 자아내고는 고작 10년 뒤 사라지다시피 했다.